▲종교개혁박물관종교개혁박물관에는 당시 그곳에서 사용했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위의 좌로부터 솜틀기계, 등잔 아래 좌로부터 함, 포도주통 등이 있다.
김민수
개신교박물관에 남아있는 유물들로 인해 그들의 삶을 더듬어볼 수 있었다. 종교적인 자유를 찾아 이곳에 정착한 이들은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갔다. 하나의 구심점을 삼되 일반 가정집과 다를바 없이 건물을 짓고, 건물 곳곳마다 유사시에 숨을 수 있는 공간과 비밀통로 등을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비밀스럽게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린 경험때문인지 프랑스 개신교인들은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한국의 개신교 상황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그게 말이 돼?"였다.
비록 2%에 불과한 개신교지만 이곳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이들은 국가의 종교정책에 따른 희생양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소수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소수라고 해서 국가로부터 차별을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국가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존감으로 삼는다. '저항정신', 그것이 프랑스개혁교회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왜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지금까지 여전히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끝까지 저항했던 이들의 저항정신을 욕되게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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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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