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서울역 광장의 강우규 의사 동상.
김현자
<강우규 평전>(책미래 펴냄)은 강우규 의사의 1919년 9월 2일의 남대문역 의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자세히 들려준다.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자,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의거를 일으킨 강우규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책이라고 한다.
책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탄생하도록 자극적인 계기를 안겨준 사람은 강우규"이다. 지난 여름 영화 <암살>을 통해 널리 알려진 김원봉, 일본 인사들과 친일파들의 암살과 조선을 핍박하는 본거지 건물들 폭파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김원봉이 '의열단'을 조직한 것은 남대문역 거사가 일어난 그 몇 달 후인 12월.
김원봉과 그와 뜻을 같이한 사람들에게 의사가 뜻한 것처럼 '나라를 구하겠다는 비장한 자극(어떤 이상한 느낌)'이 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항일 의열 투쟁의 서막을 연 한의사'이다.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남대문역 거사는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열 투쟁으로, 남대문역 의거나 강우규란 이름은 당시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의술을 잘 아시니까 일 년에도 수천 원을 버시지만은 그 돈을 한 푼도 내게 주시지 아니하고 전부 학교에 기부하시면서, "너는 너대로 살아라. 나는 나 할 일이 있으니까" 하십니다. …사형선고가 되니까 내가 낙심할까 보아 일부러 웃으시며, "생사를 두려워하는 것은 하등배이니라. 너, 조금도 애비 죽는다고 어찌 알지 말고, 아무쪼록 잘 살아가거라" 하시면서 울지도 못하게 하시옵니다. "내가 죽더라도 육체의 애비가 죽는 것이니까 영혼의 애비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하시면서 아무렇지도 않으십디다" - <강우규 평전>, '1920년 5월 4일자 한 언론에 실린 강의사 아들 강중건의 말' 중에서. 책을 통해 한 가정의 가장 또는 아버지로, 교육자이자 민족주의자로 만나게 된 강우규 의사도 매우 감동스럽다. 아니 존경스럽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의사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한학과 한의학을 공부해 한의사로 활동했는데, 의술이 뛰어나 30대 초반에 이미 거금을 모았다고 한다. 의사의 아들 강중건의 증언에 의하면 의사가 의술로 1년에만 수천 원씩. 한의사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금액을 모았는데,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증언처럼 모두 학교에 기부했다고 한다.
한의학과 상업에 종사하던 한 노인이 어떻게 그와 같은 거사를 할 수 있었을까? 책은 뛰어난 의술로 손쉽게 많은 돈을 벌음으로써 편안히 살아갈 수 있었던 강우규 의사가 개인의 안락에 머물지 않고 의열 투쟁의 불씨가 되기까지를, 한의사이자, 교육자이며, 민족운동가요, 독립 운동가였던 의사의 삶을 조명한다.
평전인 만큼 당시의 언론보도 내용이나 재판기록들을 많이 담았다. 그래서 대개의 평전들처럼 이 책도 좀 딱딱하고 어려운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총독들의 만행들을 1대부터 9대까지 순서적으로, 조선 민족운동에 대한 대책(1920) 등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주요 정책 등을 알기 쉽게 기록하고 있어 일제강점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그런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96년 전 일본을 향해 폭탄을 던진 그 현장인 옛 서울역 광장에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서 있다. 오늘도 옛 서울역 광장에는 저마다의 삶과 사연과 목적지를 품은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길을 갈 것이다. 아무리 바쁜 걸음이어도 간과하거나 잊어서는 안 될 것 또는 사람들이 있다.
강우규 의사의 삶과 자칫 움츠려들고 있던 독립운동의 물꼬를 열어준 셈인 의사의 남대문역 폭탄 사건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강우규 평전> 이 책이, 저자와 출판사가 매우 고맙기만 하다.
강우규 평전
은예린 지음,
책미래, 201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공유하기
김원봉의 의열단 그 전에 남대문역 거사가 있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