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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에릭 번스 님이 쓴 <신들의 연기, 담배>(책세상,2015)라는 책은 중남미에서 비롯한 담배가 어떻게 유럽으로 처음 퍼졌고, 유럽에서는 담배를 처음에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피우는 담배하고 씹는 담배하고 얽힌 '유럽과 미국에서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영국에서 담배를 둘러싸고 일어난 재미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바보스럽다고 할 만한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담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고, 담배로 어마어마한 돈을 챙긴 사람들이 있으며, 담배를 놓고 문화와 자유를 말하다가, 나중에는 담배와 얽혀 건강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담배가 '산업'이 되고, 나라에서는 '돈줄'로 삼는데, 이 담배가 비롯한 중남미에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징검다리'로 삼았습니다. 아무렇게나 피우던 담배가 아니었고, 돈줄로 삼아서 산업으로 다루는 담배가 아니었습니다.
<신들의 연기, 담배>가 이 대목을 조금 더 짚을 수 있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 텐데, 이 책은 유럽과 미국에서 담배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누렸는가 하는 이야기만 짚습니다. 아무래도 중남미에서 오랜 옛날부터 담배를 태운 이야기는 '글이나 책으로 남'지 않았을 테니, 이 대목까지 밝히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들(마야인)이라면 아마 이렇게 반문했을 것이다. 신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을 거부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신의 호의를 기대한단 말인가? 전달 도구인 연기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간의 기도가 하늘에 닿는단 말인가?' (87쪽)'1615년과 1616년에 아메리카인들은 모두 합쳐 2300파운드의 담배를 잉글랜드에 수출했다. 이듬해에 롤프가 씨름하던 문제를 대부분 해결하자, 식민지인들은 2만 파운드의 담배를 해외로 수출하게 되었다.' (129쪽)중남미에서도 북미에서도 그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던 사람들은 담배를 '평화'와 '두레(협동)'로 여기면서 태웠다고 합니다. 전쟁이나 산업 따위로 담배를 태우지 않았다지요. 그러면, 오늘날에는 담배가 어떤 구실을 할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어디를 가든 금연구역입니다. 담배를 마음껏 태울 수 있는 자리는 차츰차츰 사라집니다. 그러나, 어느 가게를 가든 담배는 아주 손쉽게 장만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담배로 세금을 무척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이러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담배한테서 건강을 지키도록 하는 새로운 산업'이 불거집니다. 이쪽에서는 담배를 팔아서 돈을 벌고, 저쪽에서는 담배를 끊도록 하면서 돈을 법니다. 이쪽에서는 담배를 많이 팔거나 비싸게 팔려 하고, 저쪽에서는 담배를 끊도록 하는 길에서 돈을 치르도록 합니다.
문득 모깃불을 떠올립니다. 모기를 쫓으려고 풀을 태우곤 하는데, 모깃불은 모기한테는 나쁠는지 모르나 사람한테는 좋습니다. 모기는 모깃불(쑥불) 냄새를 싫어해도, 사람은 쑥불(모깃불) 냄새를 좋아합니다. 하얗게 피우는 쑥불은 집안과 마당을 거쳐 마을에 골고루 퍼집니다. 말린 풀잎에서 나오는 냄새와 연기는 싱그러운 바람으로 거듭납니다.
'버지니아에서는 독립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민병대원의 봉급을 담배로 지급했으며, 각자의 계급과 경험에 따라 적절한 개수의 담뱃잎을 잘 세어서 배급했다 … 독립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식민지인들은 담배로 값을 치르고 유럽에서 무기와 탄약, 그리고 각종 보급품을 사들였다.' (150쪽)'아메리카인들은 승리자인 동시에 패배자이기도 했다. 수년 동안 그들이 생산한 담배를 해외에서 구할 수가 없게 되자 잉글랜드인들은 터키와 이집트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식민지의 생산품을 대체할 만한 제품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북아메리카산보다 오히려 그쪽 품종의 담뱃잎들을 더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189∼190쪽)모닥불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요즈음은 모닥불을 태울 만한 곳이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서도 모닥불을 피우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나무로 불을 피우거나 때는 일이 사라지면서, 도시가스와 기름이 이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가스나 기름을 태우면 이 냄새가 매캐합니다. 가스나 기름 타는 냄새를 사람이 좋아할 만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연탄가스를 맡고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모닥불 연기를 맡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모닥불을 피우거나 아궁이 군불을 땔 적에는 따스한 기운뿐 아니라 '나무 타는 냄새'가 우리 몸으로도 스며들면서 새 기운이 나도록 북돋운다고 할 만해요.
풀잎하고 나뭇가지가 사람을 새삼스레 살리는 구실을 한다고 할까요. 날푸성귀는 사람한테 밥이 되고, 마른 풀잎은 사람한테 약이 된다고 할까요. 굵은 줄기는 집을 세우는 기둥이 되고, 자잘한 나뭇가지라든지 잘게 썬 나무토막은 따스하면서 넉넉한 불과 연기를 사람한테 베푼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풀하고 나무를 이웃으로 삼으며 누린 삶은 오래도록 평화로우면서 따사로웠다고 할 만합니다. 화약 냄새가 흐르거나 쇠붙이 냄새가 퍼질 적에는 평화가 깨지면서 전쟁 불길이 퍼졌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면서 삶을 북돋울 적에는 숲하고 한몸이 되고, 사람들이 서로 다투거나 경쟁으로 치달을 적에는 숲하고 멀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씹는담배 1천 달러어치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력이면 무려 2만 달러어치의 지궐련을 시장에 내보낼 수 있었으며, 손으로 만든 제품과 달리 기계가 만든 제품은 맛과 외양 모두 균일했다.' (265쪽)'흑자의 원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막대한 광고비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힐은 1946년에 사망할 때까지 럭키 스트라이크 지궐련의 홍보에 무려 2억 5천만 달러 이상을 소비했다고 하는데.' (3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