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면사무소 쪽에서 올라온 적벽산 등산로와 달린 국도 3호선과 맞닿은 임도에서 적벽산을 올라가는 산길을 찾기는 어렵다.
김종신
왔던 길을 돌아 긴 의자로 왔다. 우리가 다녀온 길옆으로 한적한 길이 보였다. 편안한 흙길을 올라가자 돌탑들이 나온다. 이제 단성교가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 제법 잘 보인다. 눈을 닮은 바위, 눈을 지그시 감은 얼굴 형상의 바위가 지나가는 길을 심심하지 않게 한다. 바위들이 자연스럽게 계단을 만든 길을 따라 올라서면 더 넓은 들이 나오고 멀리 산줄기가 보인다.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구름 잔뜩 낀 날씨 속에 멀리 지리산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라보는 풍경은 아쉬움을 달래기 충분했다. 적벽정이라 적힌 정자가 나왔다. 정자 앞에서 단성교를 비롯한 단성면 들녘을 눈길이 스윽 지난 뒤 백마산을 보았다. 마치 중절모를 닮은 백마산은 진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천혜의 요새다.
백마산은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의 전설을 간직한 산이다. 정상 부근에는 백마산성 흔적이 있다. 왜적들이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고 성안 사람들이 목이 말라 항복할 것을 기다리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있었다. 당시 성안에 있던 지혜로운 장수가 말 한 필을 바위에서 쌀로 씻는 시늉을 하자 왜적들은 성안에 물이 많은 것으로 오해하고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저 너머 백마산의 멋진 자태에 넋을 잠시 잃었다. 정자 앞에는 '논어'에 나오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 쓰인 비석이 있다. 산과 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경치에 잠시 공자 말씀이 떠올랐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물처럼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산처럼 조용하기 때문에 산처럼 산다고 했던가. 귀찮고 게으른 나는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진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물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물처럼 움직이는 것은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지혜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현재 내 두 눈 앞에 펼쳐진 산과 강, 들은 너무도 아름답고 좋다. 적벽산의 바위들도 멋있다. 벼랑 아래 경호강 물줄기도 맑다. 경호강이 적벽산 아래로 비스듬히 흘러오다 직각으로 남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새가 예쁘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처럼 적벽부 뱃놀이를 모방해 강에 배를 띄우고 적벽산의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얼마나 놀기 좋은 곳이면 한때 이곳이 강성군이던 시절 태수가 밤에 배를 띄워 기생을 끼고 놀면서 적벽산에서 떨어진 돌에 배가 뒤집히고 인장을 잃어버려 파직된 적도 있다고 한다.
벼랑 위에서 바라보는 경호강의 물줄기와 들판이 주는 넉넉한 풍경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곳이 산 정상은 아니다. 야트막한 흙길을 더 올라가자 수북한 낙엽길이 나오고 정상 표지석과 함께 산신제단이 나왔다. 제단에는 그 앞에는 어느 등산객이 놓고 간 물병과 사과, 배가 놓여 있다.
단성교 0.82km, 백마산 정상 1.69km, 월명산 2.27km라는 이정표가 걸음 재촉한다. 내려가는 길에 만난 백마산과 벼랑의 바위는 아찔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이라 걸음을 곧잘 세웠다. 독수리가 마치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올라 가는 듯한 바위들을 지나자 올라온 길과 달리 가파른 산길이다.
발아래 손바닥처럼 넓적하고 초록빛 가득한 청미래덩굴들이 갈색 사이로 얼굴이 내미는 모양새가 귀엽다. 내려오자 진주에서 산청 가는 국도 3호선과 맞닿은 임도가 나온다. 다시 적벽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찾기는 어렵다. 산악회에서 나뭇가지에 매단 리본들이 산길을 안내할 뿐 여기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안내표지판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