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황장엽씨의 묘. 묘비에 '북한 민주화 위원장 황장엽의 묘'라고 써 있다.
고상만
황장엽, 그는 누구인가1923년 2월 17일, 황장엽은 평양 강동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1942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나 일제가 패망하면서 그는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간다. 당시 그의 학구열은 대단했다. 황장엽은 1946년 김일성 종합대학에 입학한 후 10년에 걸쳐 소련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철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그리고 귀국한 그는 1955년부터 김일성 종합대학의 교수가 된다.
황장엽씨는 이후 북한 김일성 체제를 지탱해 주는 유일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5년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된 그는, 이후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 확립에 관여하며 한때 정권 후계자인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 강사를 맡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주체사상을 만들었고 또한 후계자의 사상 학습 스승이었던 황장엽씨의 권력은 대단했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1972년~1983년)을 시작으로 1980년에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장,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쳐 1987년에는 조선로동당 국제담당 비서장 등 여러 요직을 겸임하며 김일성 부자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북한 내 권력자로 군림하게 된다.
황장엽씨의 공적은 '주체사상'을 체계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북한 권력의 정통성을 전 세계에 확산하기 위한 성과 역시 그의 몫이었다. 그는 제3세계 국가에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를 위해 해외에 주체사상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한편 이처럼 대단한 북한 최고의 권력자인 황장엽이 적국인 대한민국으로 망명할 것을 예상한 이는 누구도 없었다. 1997년 세상이 충격에 빠진 이유다. 그 해, 주체사상 강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그가 중국 베이징에서 대한민국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정도로 충격적 사건이었다.
왜 그랬을까. 황장엽씨는 자신이 쓴 책에서 "조국(북한)의 체제에 의분을 느껴 그 변혁을 도모하기 때문"이라고 망명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진짜 망명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황장엽씨와 함께 1997년 함께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김덕홍씨의 주장이다.
김덕홍씨는 회고록 <나는 자유주의자이다>에서 황장엽씨와 다른 주장을 펼친다. 망명 사유가 사실은 황장엽씨의 말실수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덕홍씨에 따르면 문제의 발단은 1996년 2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주체사상 국제토론회'에서였다고 한다. 이날 연설에 나선 황장엽씨가 '주체사상은 김일성·김정일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이라고 말했고 이를 뒤늦게 보고받은 김정일이 격분했다는 것이다.
이후 황장엽이 "김정일이 나를 그냥 놔둘 것 같지 않다. 욕보기 전에 자살할 수 있게 독약을 구해 달라"며 김덕홍씨에게 부탁했고 이후 자살하려는 황장엽을 김씨가 설득하여 함께 대한민국으로 망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황장엽씨는 이후 죽기 전까지 각종 강연을 통해 북한 정권의 타도를 주장하며 소위 '북한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한국에서 활동했다. 한쪽에서는 그의 활동을 지지했으나 다른 쪽에서는 '그의 역할이 남북 관계에 긴장감만 높인다'며 불편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런 부침의 세월이 그가 대한민국에서 보낸 13년간의 시간이었다.
그러던 2010년 10월 10일, 황장엽씨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다.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지 거의 13년 만의 일이었다. 분단된 두 나라에서 극단적인 인생을 살았던 시대의 인물, 황장엽. 그는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정부 여당이 현행 역사 교과서는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어서 안 된다'며 현수막까지 내거는 요즘. 바로 그 '주체사상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던 황장엽씨는 과연 지금 어디에 안장되어 있을까.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황장엽의 묘'주체사상을 만들었다는' 황장엽씨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국립묘지인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었다. 대전 현충원 국가·사회 공헌자 묘역에서 그는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생 등과 함께 나란히 안장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