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레이스거침없는 질주는 이미 시작됐다
김경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어깨를 찍어 누르는 배낭의 하중은 체내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듯 선수들을 휘청거리게 했다. 걸어서는 제한시간에 걸려 결코 완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낮에는 살을 녹이는 열기와 파리 떼로, 밤에는 추위와 들짐승들의 엄습에 몸을 도사려야 했다.
레이스가 계속될수록 몸은 부서지고, 인간의 감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자국의 명예를 건 듯 선수들 사이에는 순위를 다투는 묘한 기류마저 흘렀다. 레이스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네 명의 선수가 제한시간을 넘기거나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했다. 탈락자가 속출하자 운영본부는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레이스 거리를 530km로 단축해야 했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로 온 대지가 뜨겁게 타들어가고, 노출된 내 목덜미와 종아리도 함께 익어갔다. 임도와 계곡, 강변과 하상(河床)을 따라 푸석한 흙먼지가 끊이지 않는 'Bed River' 코스가 이어졌다. 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먹고, 달리기 위해 먹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달렸다.
레이스 8일째, 온 대지가 화염에 휩싸였다. 자연발화로 산불이 난 것이다. 매케한 연기가 산야를 뒤덮었다. 불길은 주로(走路) 양 옆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나는 두려움조차 상실한 채 불기둥 속을 뚫으며 오로지 지평선 반대편에 있을 캠프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호주의 산야를 울리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로 거세게 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