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세상을 바꾸다> 책표지.
목선재
이 곡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치 현장에서 특히 많이 쓰이는 '선언'이란 제목 때문에 과격하고 선동적인 노래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노래는 매우 서정적이며 부드럽다.
듣고 있노라면 슬픔이 느껴질 정도로 애잔하기도 하다. 이런 이 곡을 제대로 느끼거나 이해하려면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당시를 어느 정도 알아야만 한다.
1844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칠레는 1932년 이후 여러 차례의 쿠데타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황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60년대, 칠레의 민중들은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난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스페인에 빌붙어 부를 축적한(우리의 친일파들처럼) 사람들이 득세하고, 스페인의 식민시절에 형성된 불합리한 경제구조로 이익의 대부분이 외국 회사로 흘러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몇몇 사람들에 의해 '누에바 칸시온'이 탄생한다. 1970년대 칠레에서 시작된 누에바 칸시온은 '예술을 통해 민중의 권리를 찾자' 또는 '경제적 주권을 찾자'는 자기 주권 및 정체성 관련, 문화적 성격의 운동이다. 누에바 칸시온 그 중심에 빅토르 하라가 있었다.
1970년, 드디어 진보세력에 의해 민주연합이 결성,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이 되면서 남아메리카 최초의 민중정부가 들어선다. 그러나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공군 장성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붕괴, 칠레 민중들은 26년간 군부독재에 신음하게 된다. 민중 정부 수립에 큰 역할을 한 누에바 깐시온 참여 많은 예술가들이 처형되거나 망명길에 오른다.
빅토르 하라는 군사쿠데타에 항전하다 칠레 민중들에게 항전을 독려하는 연설을 마지막으로 카스트로가 선물한 소총으로 자살한 아옌데 대통령 정권의 중요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아옌데의 문화대사'란 별칭까지 붙어 있었다. 빅토르 하라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피노체트 정권은 쿠데타 직후 그를 체포해 수용소로 개조된 에스타디오칠레(경기장)에 감금하고 고문한다.
강제구금 당시 하라와 함께 수감되었던 동료는 하라가 혹독한 상황에서도 기타를 치며 <Venceremos(인민연합가)>를 불렀기 때문에 군인들이 그의 손목을 부러뜨렸다고 전한다. 부인 조안 터너의 수기에서도 하라의 장례를 치를 때 그의 손목이 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부인 조안 터너는 강제 출국을 당하면서 하라의 노래 테이프를 숨겨 가지고 나왔다. 이 테이프를 스웨덴 TV방송국의 한 직원이 복원해냄으로써 누에바 칸시온의 대표 가수의 노래가 살아남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노래, 세상을 바꾸다>에서.빅토르 하라는 감금 그 며칠 후인 9월 15일, 경기장 근처 버려진 땅에서 44발의 총상 흔적과 혹독한 고문 흔적이 남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기타를 치던 그의 손은 개머리판으로 맞아 으스러진 상태였다고 한다. 피노체트 정권의 군인들이 손가락을 자르고, 손목과 무릎을 꺾는 등의 고문을 한 때문이었다. 그의 죽음은 '누에바 칸시온'이 남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책은 '칠레 민주화운동 순교자의 노래'란 제목으로 빅토르 하라의 음악 인생과 대표곡들, 누에바 칸시온의 기수이자 민주화운동 투사로서의 숭고한 삶, 그의 삶을 송두리째 삼킨 칠레의 군부 독재와 민주화 운동 당시 상황 등을 들려준다.
외에도 광주항쟁 <오월가>의 원곡인 미셀 폴라네프의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를 비롯하여 ▲저항가요의 대명사로 불리는 피트 시거의 <We Shall Overcome(우리 승리하리라)>▲흑인노예들이 부르는 해방의 기도인 조안 바에즈의 <Kumbaya(쿰바야)> ▲핵전쟁에 대한 묵시적 경고인 밥 딜런의 <A Hard Rain's A-Gonna Fall(세찬 비가 오려하네)> ▲대물림 되는 가난을 벗어나고자 아메리카 드림을 꿈꾼 라티노들의 비애를 표현한 '티시 이노호사'의 <Donde Voy(어디로 가야 하나)> ▲유빵끼와 함께 아르헨티나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메르세데스 소사의 <Kyrie(자비를 베푸소서)>▲버마 8888민주항쟁의 투쟁가인 캔자스의 <Dust in the Wind(바람 속에 날리는 먼지)> ▲그리스 군부 치하의 슬픈 이별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To Treno Fevgi Stis Okto(기차는 8시에 떠나네)> 등 세계 혹은 여러 나라의 역사를 바꾼 곡들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준다.
노래에 얽힌 사연은 물론 여러 나라의 민주화나 핵전쟁 반대 등, 굵직한 세계사 상식까지 접할 수 있으리라 눈치 챈 독자들도 많으리라. 해외여행과 스포츠 행사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일부 마니아들만 좋아하던 '월드음악'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영·미팝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랫말 번역은 물론 아티나 곡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거의 없어서 아쉽다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국내 월드음악 그 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이 책이 월드음악에 대한 부족한 정보 해소는 물론 우리의 문화 편식을 깨는 계기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래, 세상을 바꾸다 - 저항의 시, 저항의 노래
유종순 지음,
목선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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