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돌봄교사 조범례씨의 돌봄교실 모습
조범례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컴퓨터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학교에 발을 들이게 됐다. 등산을 좋아했던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설악산에 올랐는데, 그 정상에서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 그게 인연이 되어 1997년 초등학교 방과후 컴퓨터 특기적성 강사를 시작하게 됐다.
"그 땐 방과후교사가 학교장이랑 직접 계약하는 시스템이었어요. 낮에는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학원에 나갔죠. 2년쯤 후에 결혼을 하면서 밤에 일해야 하는 학원은 정리를 하고 학교만 나가게 됐어요." 학교와 직접계약 형태로 일을 할 때는 수강료를 낮추더라도 강사 인건비는 챙겨갈 수 있었는데 중간에 위탁업체가 끼다 보니 인건비가 많이 낮아졌다. 한 달 200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600만 원의 수업료를 거둬들이는데 그녀가 받는 강사비는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고. 그런 불합리한 구조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는 학교를 떠나게 됐다. 이후 공부방부터 텔레마케터, 로봇강사, 액세서리 노점 등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는 그녀다.
"남편 사업이 잘 안 돼서 경제적으로 정말 힘든 때였어요. 어린 애를 돌보면서 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아이 때문에 밤늦게까지 일을 할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학교가 보이더라고요. 그 때 돌봄교실이 막 생길 즈음이었어요. 아이 데리고 아동지도사 수업을 들으러 다녔죠. 그렇게 자격증을 따고 2006년 3월에 처음 돌봄교사로 가게 됐어요."하루 4시간, 주 20시간씩 근무를 하고 처음 받은 월급이 20만 원 가량. 당시 그녀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한 시간 거리였는데, 버스에서 내리면 학교 근처의 마트에 들러 아이들 간식을 사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했다. 간식거리를 사들고 학교에 가면 집에서 챙겨온 프라이팬 등 조리기구로 직접 간식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였다. 다음 학기에 그녀는 집 근처의 학교로 옮겨 갔다. 하지만 한 학기 만에 계약이 종료되고 말았다.
"파리 목숨인 거죠. 옮겨간 학교에서는 언론재단 등 여기저기서 사업을 받아오기도 하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정작 학교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이후 그녀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 시작되는 대전의 S초등학교에서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란 교육취약 아동·청소년의 교육적 성취 제고를 목표로 가정, 학교,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통합지원체제구축을 통해서 학습, 문화·체험, 심리·정서, 복지 등 아동·청소년 삶의 전 영역에서의 필요에 대응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2003년 중앙정부의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던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은 2006년부터 전국적 단위로 시행되었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학교로 결정이 되면 교육복지사(사회복지사), 사서, 방과후교사 세 명이 꾸려졌으며, 하루 8시간 근무조건으로 채용되었다.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나.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던, 그녀가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가 꿈에 나타난 다음날 합격 전화를 받았단다.
"너무나 절실했거든요. 당장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만 했으니까. 지금도 생각나요. 설 쇠러 서울 시댁에 올라가는 중에 전화를 받았어요. 그렇게 간절했던 일이니까 정말 죽자고 일했어요. 출근 첫 날 교장선생이 저를 데리고 유치원 교실로 가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봤지? 이렇게 하면 돼'라고. 그 때 유치원은 교실이 2개에 교사가 10명이었어요. 저는 혼자인데 유치원이랑 비슷하게 하면 된다고. 어쩌겠어요, 매일 새벽 2시까지 작업하고 노는 토요일에도 나가서 일하고 하면서 비슷하게 꾸려갔죠."인정은 받았지만 너무 힘들고 지쳤노라고 그녀는 회상했다. 그곳에서 일하던 중 방과후교실이 돌봄교실로 이름이 바뀌고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3년 정도 지났을까. 돌봄교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히고 교육부에서 예산이 나오면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학교는 돌봄교실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의 근무시간을 줄였고 급여 역시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담당업무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무기계약에 교육감 직고용, "애정과 책임감 더 생겨"방과후교사로 지내면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에 투입되면서, 엄마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사회복지에 관심이 생겼다는 그녀다. 일을 하며 사회복지 관련 공부를 병행했다. 기회가 된다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일을 하고 싶다 생각하던 중 이사 갈 집 근처 학교의 돌봄교사 채용공고가 떴다. 하나 있는 딸아이가 엄마가 학교에 함께 있기를 원했단다. 그렇게 그녀는 지금 근무지인 도안의 한 초등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사실 우리 딸이 제가 학교에 함께 있었으면 하는 이유가 있어요. 어린 딸을 돌봐줄 가족이 없었어요. 아이 외할머니가 봐주기로 하셨는데 혼자 사는 친정 오빠가 아파서 어머니가 그쪽으로 가셨거든요. 당장 일은 해야 하고 아이를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그래서 아이를 제가 일하는 학교로 전학 시켜서 돌봄교실에 데리고 있을 때가 있었어요. 반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티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제 아이를 데리고 있었어요."모녀지간인 게 드러나지 않도록 딸아이에게 '절대 엄마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던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럼에도 딸은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어 좋아했다고. 그녀 역시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이를 한 공간에 두고서 일할 수 있는 게 큰 '복'이었다고 말한다.
"사직서를 내고서야 돌봄교실 아이들에게 밝혔어요. OOO가 내 딸이라고.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요. 제 교실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제 아이들인데, 딸이라고 더 봐주고 하지 않았죠. 오히려 더 엄하게 했어요. 그게 최선이었어요. 그렇게라도 일할 수 있었던 게 복이었고요."힘들었기에 더욱 각별했던 그 시간들을 지나와서인가, 중학교 2학년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딸과 여전히 소통이 잘 된단다. 오랜 시간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온 그녀이기에 딸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것일 게다.
지금의 학교로 옮긴 지 어느덧 5년. 그녀는 매해 근로계약을 갱신해오다가 재작년부터 무기계약으로 바뀌어 '하루살이'는 면했다. 교무·행정업무보조, 방과후교사(돌봄교사) 등 학교회계직으로 불리던 인력들이 올해 대전을 포함한 일부 지역교육청에서는 '교육공무직'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또한 조례가 개정되면서 수습기간 6개월을 거친 돌봄교사는 무기계약이 가능하게 됐다. 학교장 채용으로 이뤄지던 돌봄교사 고용방식도 지난 1월 1일부터 교육감 직고용제로 바뀌었다.
"학교장이 채용하는 시스템 때문에 힘들었어요. 나를 뽑아준 교장이 다른 학교로 가고 없으면 다음 연도 채용은 불투명해지는 거예요. 또 돌봄교실은 학교에서 '미운 오리새끼' 같은 존재예요. 교장선생님 퇴근 시간 이후에도 문이 열려 있는 곳이 돌봄교실이거든요. 편히 쉬고 싶으실 텐데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어요. 사고라도 나면 학교의 장에게 최종책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돌봄교실은 일찍 문닫고 싶은, 없애고 싶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매해 위태로운 하루살이 인생을 거듭해오다가 무기계약이 되기까지 쉬운 길은 아니었다. 학교는 돌봄교사의 근무시간 1~2시간 줄이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번거로운 과정을 피하기 위해 신규 채용공고를 올렸다. 채용공고는 형식일 뿐 전년도에 이어 근무하는 거지만 신규채용이 되는 경우 연가일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지금은 6개월 근무하면 무기계약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2년을 채워야 무기계약이 가능했어요. 매해 신규채용이 되다 보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되는 거죠. 학교에서는 그러더라고요. 명명백백하게 이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야 해서 신규채용 공고를 내는 거라고. 전임자가 충분히 잘 하고 있다면 내부평가를 통해서 연장 결정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그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던 학교는 노조의 공문(무기계약 회피의 건)을 통하자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채용된 그녀는 이제 매년 계약하지 않아도 되는 무기계약의 교육감 직고용 신분이 됐다. 과거 1년짜리 하루살이 삶을 살 때보다 더 안정감이 생긴 건 물론이고 학교에 대한 애정, 일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그녀는 말한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무기계약이 되면 긴장감도 떨어지고 일도 더 안 할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돈 얼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우 받지 못하는 게 정말 화나는 일이에요. 제가 노조활동을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고요. 돌봄교사들은 학교 안에서 근무하지만 교내 직원들과 교류할 여건이 안 돼요. 근무시간도 그렇고 여유시간도 없고요. 어울릴 수 없으니 소통도 안 되겠죠. 돌봄교사들이 가장 힘든 게 뭔지 아세요. 우리는 365일, 태풍이 와도, 메르스가 와도, 아마 지진이 나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여전히 학교 안 외톨이 "우리를 동료로 봐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