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이코>의 포스터
김준희
<사이코>의 주인공 노만 베이츠는 40살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와 함께 외딴 곳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 결혼은커녕 베이츠는 그동안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식탁에 마주 앉아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다.
베이츠가 이렇게 된 데에는 그에 대한 어머니의 비틀린 집착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베이츠에게 이성을 멀리하라고, 이성을 가까이 하고 성관계를 맺으면 지옥불에 떨어지는 벌을 받는다고 가르쳐왔다. 여기에는 베이츠를 낳자마자 무책임하게 달아나버린 남편에 대한 기억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집착은 이성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베이츠에게 술과 담배도 하지 못하게 했고 걸핏하면 심한 잔소리와 폭언을 늘어놓았다. 베이츠는 모텔 일이 끝나고나면 고풍스러운 방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을 즐겼다. 어머니는 베이츠에게 '그런 쓰레기 같은 책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너는 남자다운 기질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마마보이'다, 너는 이 집을 벗어날 능력조차 없다, 너는 나를 죽이고 싶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한테는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말이 맞지, 노만 베이츠?
비가 내리는 밤, 이 모텔에 메어리 크레인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찾아온다. 낡은 차를 몰고 온 메어리에게 베이츠는 1인용 방 하나를 내주고 그녀와 식탁에 마주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한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메어리와 함께 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윗층에 있던 어머니가 엿들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안그래도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가 이 집에 젊은 여자가 혼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데.
모텔을 운영하며 서로에게 집착하는 모자이 작품은 이후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의해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된다. 히치콕 감독의 최고 걸작이자, 그 유명한 '샤워신(shower scene)'이 있던 영화 <사이코>가 원작보다 더 커다랗게 히트를 하면서 로버트 블록의 이름도 덩달아서 유명해진다.
영화가 성공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히치콕 감독의 연출력이 한몫을 했을 테지만, 그에 못지 않게 원작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탄탄한 구성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영화 <사이코>에서 노만 베이츠 역을 맡았던 안소니 퍼킨스는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 배역에 대한 미련 또는 집착을 계속 이어간다. <사이코>는 이후에 <사이코 2>, <사이코 3> 등의 후속작으로 이어지지만 당연히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1편 만큼 성공하지 못한다. <사이코 3>에서는 안소니 퍼킨스가 감독과 주연을 겸하기도 했다.
장기간 동안 지속적인 억압을 받으면 사람은 탈출구를 찾기 마련이다. 그것은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물리적인 탈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내면 어딘가로 달아나는 정신적인 탈출일 수도 있다. 노만 베이츠는 후자를 택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격을 분열시킨다.
하나는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로서의 자신이다. 다른 하나는 모텔을 운영하면서 평범한 생활을 해나가는 성인으로서의 노만 베이츠다.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면 베이츠는 어린아이가 된다. 대신에 성인 남성이 해야할 일이 생겨나면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온다.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오더라도 그가 과연 얼마나 선악의 판단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베이츠는 분열된 인격 사이를 오가면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외부의 자극 같은 요인으로 두 인격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외딴 모텔에서 연속살인사건이 발생하지만, 그 살인은 작품의 실제 모델인 에드 게인의 범죄보다는 훨씬 덜 끔찍하다. 작가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현실의 범죄를 따라가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의 세계가 잔인하더라도 현실은 항상 그보다 더 잔인하기 때문이다. <사이코>는 무엇보다도 '사이코'라는 단어를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다. 원작자 로버트 블록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일을 해낸 셈이다.
싸이코
로버트 블록 지음, 정태원 옮김,
도서출판 다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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