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애의 아토피 사진?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정성화
감격의 포옹이 끝나고 난 후 큰애 피부 상태를 보니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고등학교 무렵에 시작된 큰애의 아토피는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을 계속 다니고, 민간에서 좋다고 하는 온갖 처방을 다 사용해보았지만 치료가 되지 않았고, 그 상태로 호주로 간 것이다. 나는 공기가 좋은 호주에서 생활하면 아토피 증세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아토피는 음식, 수면, 스트레스 등에 의하여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혼자서 생활하다 보니 아무래도 패스트 푸드를 많이 먹고, 수면시간도 불규칙적으로 되고, 장래문제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데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인지 큰애는 아토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주의 의료비는 보통의 유학생에게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아토피 때문에 병원 다니겠다고 했으면 무리해서라도 돈을 보내 줬겠지만, 큰애는 아토피에 그 정도 돈을 소비할 엄두를 못 낸 것이다. 나도 이 정도로 심한 줄 몰랐기 때문에 치료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우리도 얼마 전까지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술비가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된 사람에 관한 뉴스를 심심찮게 들은 기억이 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사소한 치료도,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에서는 어려운 선택이 된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의료보험이 없으면 치료비가 천문학적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이 파산신청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의료비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호주에서도 시민권자가 아니면 의료비는 보통의 유학생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고 한다. 큰 애 이야기에 의하면 자기가 아는 사람이 계단에서 굴러 어깨 골절상을 입어서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가 당신은 도저히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응급처치만 우선 해줄 테니 한국에 돌아가서 치료를 받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거북 등같이 변해버린 피부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큰애가 겪은 고통의 시간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잘했더라면 큰애는 자신의 상태를 내게 알려 주었을 것이고, 그러면 뭔가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호주의 의료비가 아무리 비싸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늘어가는 잔소리 때문에, 또는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 때문에, 나는 고민을 함께 나눌 아버지로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후회와 자책감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이제 상태가 파악되었으니 해결방법을 찾아야지. 그렇게 아픈 마음을 누르면서 큰 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멜버른 아침 공기는 더 없이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