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11월 15일(현지시간) 오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안탈리아 레그넘 호텔에서 정상회의 전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청와대
지금 이 순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인데, 국내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출국해서 여기저기 자신만의 패션쇼를 펼치는 건 이제 한두 번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끝까지 침묵하다가, 해외에만 나가면 맨날 패션쇼나 하는 인물은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그냥 '영부인'에 가까운 것 아닐까? (취임 이후 약 1년 동안 공식석상에서 착용한 옷만 무려 122벌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자신의 위치에 맞지 않는 대표자는 모두에게 비극이다.
이마저도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옷을 입지 않아서 비판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측 수행원들이 다 어두운 정장 차림을 하고 묵념을 했는데,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대통령이 오히려 하늘색 옷을 입어서 빈축을 샀다. 이번에도 G20 정상회의에서 프랑스 파리 테러를 추모하는데, 괜히 밝은색 옷을 입은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도대체 이런 걸 '패션외교'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현재까지 계속해서 문제가 돼왔던 게 박근혜의 '유체이탈 화법'이다. 대통령은 스스로 최종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순전히 자기 편의에 따라서 '피해자'와 '심판자'와 '관찰자'를 마구 오가는, 너무나 '변칙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박근혜는 항상 자신이 스스로 고개를 숙여야 할 때 아랫것들을 꾸짖고, 자기가 직접 다짐을 해야 할 때 다른 이에게 명령을 내리며,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할 때 남들 눈치를 본다.
이 나라에서 공적 책무의 유일무이한 화신인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이런 식으로 전체 시스템에 유령처럼 빌붙어서 혼돈을 야기시키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여기에 더해서 우주, 기운, 혼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제사장 화법'까지 구사하고 있다. 요즘 박근혜를 보면 국민의 대리인인 대통령이 아니라, 신의 대리인인 제사장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박근혜가 유체이탈 화법을 쓸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사이비 종교적 기반으로부터 나오는 측면이 강하다.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드는 유권자들에게 박근혜는 박정희의 현신(現身) 또는 메신저인 셈이다. 그래서 (신정정치 사회의 제사장처럼) 자신이 그대로 책임을 지기보다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박정희의 뜻을 내세우거나, 제3자의 입장에서 심판을 내리고, 마치 자기와는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얘기인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 지배의 정통성이 지배자의 신성(神性)에 바탕을 둔 체제를 신정정치라고 한다면, 일부 유권자들이 탄신제를 지내며 예배에서 '우상숭배'를 하는 박정희의 대리인인 박근혜(제사장)는 책임의 주체가 아닌 순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영국 가디언지이 특파원이 세월호 참사 때 "서양국가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고도 신용과 지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한 걸 봐도 알 수 있듯이, 전혀 아무런 실질적 업적이 없는 박근혜 같은 통치자는 '제정일치 국가'에서나 가능하지 않나?
어떻게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대통령이 아니라 제사장인 박근혜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종교의 시대인 중세 유럽에서도 원래 대부분의 학교는 교회의 일부분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회에서 교육을 받았다. 종교는 합리적 토론이 아닌 맹목적 믿음의 대상이고, 박근혜에게 있어서 박정희와 관련된 역사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역사·다른 교육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드는 유권자들에게도 종교적 성격은 동일하게 적용되기에, 이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정치학자나 평론가들이 (제정분리와 세속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기반해서) 온갖 이론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를 설명하려 해도, 결국엔 비합리적이고 맹목적 추종 외에는 별로 남는 게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이미 박정희는 신격화 됐고 박근혜는 제사장처럼 됐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적 퇴행을 막기 어려울 듯하다. 국정교과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퇴행 중 하나이고, 최근 박근혜의 "온 우주가 도와준다" · "그런 기운이 온다" · "혼이 비정상이 된다" 역시 그런 연장선 상에서 봐야 한다. 헬조선은 사이비 종교와 후진적 정치의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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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신', 박근혜는 '제사장'이 되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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