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책과콩나무
난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입을 열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일곱 군데의 학교를 전전하면서 나는 아무 말 않는 편이 유리하다는 걸 배웠다. (23쪽)
나는 책을 한 권 꺼내 펼쳤지만 글자들이 꿈틀거리고 춤을 추었다. 움직이는 글자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는 걸까? (29쪽)린다 멀랠리 헌트 님이 쓴 어린이문학 <나무 위의 물고기>(책과콩나무,2015)를 읽다가 얼굴이 화끈해집니다. 내 어릴 적 일이 환하게 갑작스레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 <나무 위의 물고기>에 나오는 '앨리'라는 아이는 열세 살쯤 되는데 글을 제대로 못 읽습니다.
책을 펼치면 글씨가 마치 춤을 추는 듯이 날아가거나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가리켜 '난독증'이라고 한다는군요. 아마 글을 잘 읽는 사람이라든지, 글을 읽으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붙인 이름일 테지요.
나한테 난독증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나는 혀짤배기이고, 말을 조금만 빨리 하려고 하면 혀가 꼬여서 소리가 샙니다.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언제나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윽박질렀고, 교과서 읽기를 시킨다든지 발표를 시킬 적에 하나라도 틀리면 어김없이 몽둥이가 춤을 추고 손찌검으로 불을 뿜었어요.
이런 학교 얼거리에서 교과서 읽기를 시키면 몹시 떨린 나머지 말소리가 샜습니다. 말소리가 새지 않도록 천천히 읽으려 하면 굼벵이가 기어가느냐 하면서 다그치니 동무들이 깔깔거리며 웃어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교과서 읽기를 시킬 적마다 웃음거리가 됩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일이 언제나 두렵고 무섭도록 내몰던 예전 학교 모습이라고 할까요. <나무 위의 물고기>를 읽는 내내 어릴 적 학교가 떠올라서 자꾸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엄마 목소리에 담긴 피곤함에, 졸라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터덜터덜 욕실로 향했다.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이 널 싫어한다는 소리는 하지 마!" 엄마가 외쳤다. "세상에 누가 너 같은 아이를 싫어하겠어?" (43쪽)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학생들이 전부 똑같기를 바라는 것 같다. 모든 학생들이 완벽하고 얌전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런데 대니얼스 선생님은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 (71쪽)어린이문학 <나무 위의 물고기>를 보면, 앨리 곁에 앨리를 돕는 동무가 둘 있습니다. 두 아이는 앨리한테 '다른 아이하고 참으로 다른 모습'이 있는 줄 압니다. 그리고 '다른 모습'은 그저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여기면서, 이 대목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는 앨리가 '다른 아이하고 참으로 다른 모습'을 놓고 끈질기게 꼬리를 잡으면서 놀리거나 괴롭히려고 하지만, 앨리 곁에서 동무로 함께 지내는 두 아이는, '서로서로 아름다운 동무'라고 여기는 마음으로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되어 줍니다.
이리하여, 세 동무가 씩씩하게 학교를 다니면서 어려움을 헤치고 즐거운 삶을 찾는 이야기가 흐르는데,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또 한 가지 일이 떠오릅니다. 수업을 하며 무시무시한 교사들이 몽둥이를 들고 으르렁거리면서 나처럼 뭔가를 '잘 못 하'거나 '어설프게 하'는 아이를 다그치거나 놀림감이나 웃음거리로 삼는 짓을 하더라도, 이런 짓에 웃지 않는 동무들이 있어요.
그리고, 이 동무들은 제가 여느 때에 함께 걷거나 놀거나 어울리다가 '말소리가 샐' 적에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냅니다. 이러면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아차립니다. 이 동무들은 나한테 "너 혀짤배기네!" 하면서 놀린 적도 없고,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무렵에 그 모습을 제대로 못 느꼈습니다. 내가 또 말소리가 샜구나 하고 느껴서 얼굴이 발개지고 창피하다고 느꼈을 뿐, 내 동무들은 내 말소리 샌 모습을 하나도 놀리지 않고 따지지 않는데, 이렇게 고맙고 훌륭한 동무들이 있는데, 이 동무들한테 고맙다는 마음을 그때에는 미처 밝히지 못했어요. 내 창피를 감추느라 바빴습니다. 이제서야 그 마음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