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이브 라이프동 내부 모습. 2010년 6월 10일 개장할 당시 가든파이브의 분양률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입점한 상가들은 장사가 되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였다.
최인기
박봉규씨와 이씨의 죽음은 청계천 상인들의 험난한 미래를 예고했다. 복원 전 청계천로 주변에는 1000여 명의 노점상과 6만여 개의 점포, 22만여 명의 상인들이 밀집한 대형 상권이었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앞두고 서울시는 노점상에 대해 강경탄압으로 일관했다. 노점상은 불법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2003년 7월 1일 복원공사가 시작되자 노점상에 대한 탄압은 강도를 더해 갔다. 2003년 11월 30일 서울시는 노점상에 대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행정 집행을 시행했다. 이날 서울시는 공무원과 경찰, 철거용역반을 동원하여 노점상을 일소해 버렸다.
2004년 1월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축구장)에 풍물시장을 개설하고, 950여 명의 노점상을 입주시켰다. 풍물시장이 문을 열자 평일 3만여 명, 주말 10만여 명이 몰려들어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개장 초기의 반짝 특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안정적인 상권이 형성되기 어려웠고, 운동장이라는 공간적인 제약도 무시할 수 없었다.
풍물시장의 반짝 특수는 2004년 4월이 되자 끝났다. 반짝 특수가 끝나자 잠복했던 문제가 드러났다. 힘 있는 몇몇 상인들이 좌판 수십 개씩 차지하여 갈등을 일으켰다. 하지만 서울시는 상인 명부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할 뿐이었다.
풍물시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동대문 주변의 대형 쇼핑몰로 발길을 돌렸다. 장사가 되지 않자 상인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미흡한 기반시설을 보강하기 위해 점포당 70만 원씩 거둬 전기가설과 지붕 공사를 했다.
누가 보더라는 동대문 풍물시장은 한시적인 것이었다. 앞날이 불안한 노점상들은 서울시에 다음과 같은 대책을 요구했다. 복원공사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고,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이주상가(풍물시장)를 조성해 달라는 것과 복원 후에도 청계 7~8가에서 노점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노점상은 불법이기 때문에 피해 보상도, 노점 허용도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2006년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동대문 풍물시장의 폐쇄는 예고됐다. 그해 8월 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에 디자인콤플렉스(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여 풍물시장의 철거를 공식화했다.
2007년 2월부터 9월까지 디자인콤플렉스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마친 서울시는 2008년 4월 16일 동대문 풍물시장을 폐쇄했다. 서울시가 노점상에게 내놓은 대책은 동대문구 제기동(숭인여중 터)에 새로 조성한 풍물시장으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진 곳에 조성된 풍물시장에 입주를 희망하는 노점상은 많지 않았다. 결국 청계천 복원이라는 열망 속에서 노점상들은 희망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과 문서로 합의하지 말라청계천 복원사업이 본격화되던 2002년 8월 12일 청계천 상권수호 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청계 3∼4가에 있는 7개 상인단체(세운상가시장 협의회, 산업용재 공구상가협회, 아세아상가, 광도 상가, 대림 상가, 현대 상가, 청계 상가 상우회)가 대책위에 참여했다. 해가 바뀐 2003년 2월에는 의류 상가 단체들이 중심이 된 의류 상가 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서울시와 상인 대표들 간의 협상은 2003년 1월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협상에 임했다. '영업 손실 보상 등 간접보상은 없다', '이주문제와 리모델링 재개발 재건축 관련 금융 지원 등의 협상안에 대한 문서계약은 없고 오직 구두로 설득하고 협상한다', '이주 의지가 있는 상인은 최대한 도와준다', '공사 도중 일어난 상품 및 건물 파손 등 직접적 피해는 100% 보상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일관성 있게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황기연 외, <프로젝트 청계천>, 174쪽)이중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영업 손실 보상 등 간접보상은 없다'는 것과 '문서계약은 없고 오직 구두로 설득하고 협상'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시의 협상 원칙은 "정부는 기업과 달리 정책을 가지고 누구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므로 계약서는 필요 없다"는 이명박 시장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상인들의 경우 '청계천 복원반대'를 내세웠으나 협상이 시작되자 피해 보상과 공사 연기가 주된 관심사였다. 서울시는 피해 보상은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사 연기는 이명박 시장 임기 내에 완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2003년 4월 2일 서울시는 청계 상인들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종합대책은 3개 분야(영업 불편 최소화 대책, 상권 활성화 대책, 기타사항) 10개 항의 내용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때 처음으로 이주지원 대책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토대로 서울시와 상인 대표들은 송파구 문정동에 이주상가를 건설키로 잠정 합의(2003. 5. 23)했다. 비공식으로 이루어진 후속 협상에서 이주단지를 9만 평에서 15만 평으로 확대키로 하고, 청계 상인에게 이주상가를 특별분양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2003년 6월 21일 이명박 시장과 6인의 상인대표와의 면담에서 청계 상인 이주계획은 사실상 합의됐다. 이날 합의된 내용은 '상인대책 전담기구의 설치', '이주나 잔류와 상관없는 상권관리대책 마련',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상인대책 추진'이었다.
그런데 이날 합의는 문서가 없는 구두 약속이었다. 협상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관철한 서울시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서울시는 이때의 합의를 '공공부문 갈등관리 전략'의 모범사례로 꼽았다). 반면 이명박 시장의 달콤한 말을 믿었던 상인들은 이날의 약속이 족쇄가 되어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청계 상인 이주상가 가든파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