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하나도 알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바지런히 가심(벼베기)을 하고는 햇볕에 말리려고 아침저녁으로 바쁜 시골 할매를 생각합니다. 대통령도 시골 할매도 모두 밥 한 그릇을 먹고, 이 밥 한 그릇은 언제나 시골지기 손끝에서 태어납니다. 역사란 어디에 있을까요?
최종규
책 하나를 놓고 헤아려 본다면, 이른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책이 아닙니다. 천 부가 팔릴 동 말 동하는 책도 '책'입니다. 이천 부나 삼천 부밖에 안 팔렸대서 이러한 책이 '안 아름다운 책'일 수 없습니다. 십만 부나 백만 부쯤 팔려야 '아름다운 책'이 되지 않습니다.
많이 팔린 책은 그저 '많이 팔린 책'이고, 적게 팔린 책은 그저 '적게 팔린 책'입니다. 첫판도 다 팔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책은 '잘 안 팔린 책'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나라에서 교육이나 문화 행정을 맡은 일꾼이라면, 국정 교과서 같은 굴레에 스스로 갇히려 하는 몸짓이 아니라, '아름다운 책'이 골고루 나올 수 있는 길을 여는 몸짓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이 한두 가지 책만 읽고 책을 더 안 읽는 바보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들이 '아름다운 책'을 꾸준히 골고루 읽으면서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슬기를 보듬도록 이끄는 참다운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교과서는 여러 가지가 있어야지요. 너무 마땅합니다. 정당도 여러 곳이 있어야지요. 아주 마땅합니다. 대통령은 한 사람이어도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지역이나 정당마다 골고루 있어야 할 테고, 공무원도 지역마다 부서마다 골고루 있어야지요.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고토쿠 등이 몸을 던져 제시한 것은 천황제가 자애에 가득 찬 무한 포용의 체계가 아니라 이단 배제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학한 것이며, 그 화기애애한 그늘에 사람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가혹함을 숨기고 있는 모순 덩어리라는 진실이었다. (327쪽)'고른 삶'하고 동떨어질 적에 독재가 되거나 군국주의가 됩니다. '나누는 삶'하고 멀어질 적에 반민주가 되거나 제국주의가 됩니다. 일본 사회를 들여다보는 인문책 <메이지의 문화>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독재 아닌 평화'로 나아가고, '반민주 아닌 민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정치·사회 권력자가 할 일이란 참 많을 텐데 역사 교과서 하나를 바보스레 엮는다고 하는 데에 이렇게 힘을 기울이는 일이란 얼마나 부질없는지 부디 알아차릴 수 있기를 빕니다. 먼 뒷날 역사를 내다볼 수 있기를 빌어요. 오늘날 정치·사회 권력자는 평화와 평등을 이루는 길을 살펴야 하고, 에너지와 식량을 슬기롭게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이런 데에 힘을 쏟아야지요.
평화와 엇나가거나 민주를 등돌리는 정치 권력이나 사회 권력은 '오늘 이곳'에서는 온갖 권력을 휘둘러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듯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고작 다섯 해 뒤에도, 열 해 뒤에도,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도 역사가를 비롯한 '생각 있는 사람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권력자가 저지른 어설픈 몸짓을 환하게 알아채면서 '새 역사를 쓰리'라 느낍니다. 어제와 모레를 함께 바라보면서 오늘을 곱게 일구는 삶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메이지의 문화
이로카와 다이키치 지음, 박진우 옮김,
삼천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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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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