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11학년 역사 교과서 목록에서 현대사 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하였다.
신지원
20페이지 분량인 스리랑카 현대사 부분에서 11.6.1단원은 의원내각제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는데 스리랑카의 역사라기보다는 다양한 정당 체제의 개념과 용어에 대한 설명이었다.
약 5페이지 분량에서 스리랑카를 언급하고 있는데 내각제도를 설명하며(현재 스리랑카는 대통령 중심제이다) 대통령과 내각이 스리랑카의 행정부에 속하고 있으며 총리가 선출되는 방식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한 단락이 전부였다. 11.6.2와 11.6.3 단원도 다르지 않다.
타밀족이 분리 독립 운동을 일으키게 되는 차별 정책들에 대해서나 1971년에 발생한 극좌 민족해방전선 청년 주도 폭동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스리랑카의 주요 당들에 대한 내용도 찾아볼 수 없었다.
12-13학년 역사책 교수요목에 역사교육의 목적이 명시돼 있다.
'사건의 본질과 인과관계를 연대순으로 공부함으로써 배우게 되는 지식과 규율을 실생활에 적응하고자 한다. 민족 정체성과 국민적 화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과거에 대해 공부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자 한다. 국가 문제에 대해 의무적으로 공부하게 하고자 한다.'이 역사책에서 주는 제한적인 현대사 범위와 얕은 정보만으로 이 중 몇 가지를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현대사의 범위와 서술 내용에 대해 스리랑카 교육부에 문의 메일을 보냈지만 2주가 지난 현재까지 답을 받지 못한 상태이다.
몇 년 전의 현대사, 역사가 되지 못하다그렇다면 이 국정화 역사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스리랑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놀랍게도 대답하는 사람 모두 문제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스리랑카 역사 교과서에 문제가 있는 거 같냐는 질문에 모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학교 안에서는 국가가 편찬한 교과서만을 배워야 하지만 학교 밖에서 충분히 다른 의견의 역사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일찍 잘려 버린 현대사를 배우고 있는 그들에게 역사는 그저 오래 전의 이야기인 게 당연하다. 그리고 몇 년 전의 현대사는 아직 역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대통령 중심제가 된 이후의 정부에 대한 부분을 전혀 배우지 않고 이로써 어떤 쪽으로든 생각해 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자라난다.
놀랍게도 질문을 조금 달리해서 국가가 역사를 만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갹하냐고 물으니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역사가 국가에 의해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불어 많은 아시아 국가가 역사를 마음대로 바꾸려 한다면서 안타까움까지 내비쳤다.
이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국가가 만든 교과서 자체에서는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 역설을 대화할 때마다 마주해야 했다. 다른 역사를 배운 적 없이 정부가 골라 보여준 역사를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역설이 아닐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