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채도시의 아파트 생활에선 필요 없는 도구인지라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다.
전병호
초대하지 않았는데 슬금슬금 찾아 오는 손님은 파리 말고 또 있다. 바로 거미다. 이곳 전주 공기가 맑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가게가 도로변이라 그런 건지 유독 거미들이 많다. 오픈 한 지 일주일쯤 지나서부터 간판 주변에 거미집을 짓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아침 가게 안 청소를 하는데 천장 구석에 집을 짓고 있는 녀석을 발견하였다.
어떻게 그곳까지 올라가 집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거미의 대단한 생존 능력에 경탄할 뿐이다. 공사 하기 전 원래 자기 영역이었는지 아니면 새로 분가한 녀석인지 몰라도 살아보겠다고 그 높은 곳에 밤새 작업한 모양이다.
불청객이지만 살려고 버둥거리는 생명을 살생하자니 그리 유쾌한 작업은 아니었다. 이 녀석들도 같이 먹고 살자고 이곳에 몰려든 것일 텐데 내가 너무 야박하게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손님 맞는 국숫집에 거미줄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고. 바로 빗자루로 녀석의 흔적을 없앴다.
나와 상관없는 자영업자는 없다사실 국숫집 하나가 이렇게 눈에 보이는 파리, 거미들만 먹여 살리는 게 아니다. 가게를 오픈 하니 이곳 저곳에서 예상 못한 협업자들이 몰려 들었다. 국숫집 하기 전에는 몰랐다. 이렇게 다양한 직종 사람들이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을. 식당 한 개 오픈하면 우선 처음 임대를 소개해준 부동산업자부터 인테리어 업체, 광고 디자인업체, 간판업자, 조명가게, 정수기업자, 포스판매업자, 보험사직원, 전단지인쇄업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상생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시차를 두고 찾아오는 카드사 직원, 전화광고업체, 알바알선업체, 각종 식자재납품업체들까지 연관 종사자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니까 내가 파는 국수 한 그릇 속에 이리저리 얽힌 우리나라 경제가 들어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앞으로 주변에 있는 음식점이나 가게들을 보거든 나와 아무 관련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자영업자 한 명은 작지만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아사직전의 이 나라 자영업자들을 각자도생(各自圖生)하게 놔둬선 안 된다는 말이다. 지난 메르스 사태 여파로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일은 말로만 떠들 일이 아니다. 경기를 살린답시고 기껏 백화점, 대형유통업자들 배만 불리는 정책으로 생색만 낼 게 아니다.
정말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자 한다면 현장에 나와서 직접 자영업자들 목소리를 듣고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해주길 바란다. 정부에서 국정화 하겠다고 비밀리에 책정했다는 44억 원이면 만원짜리 식사상품권이 44만장이다. 그걸 서민들에게 나눠줘 보라. 지금이 어디 역사책 국정화 논쟁할 때인가? 지금이 어디 종북 타령 색깔 논쟁할 때인가? 종북, 좌파들 때문에 죽는 서민들보다 망해서 죽는 자영업자가 더 많다는 것을 정부와 정치권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파리 날린다'는 말이 있다. 국숫집을 하면서 이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가게는 손님이 줄어 드니 파리도 줄어 들었다. 지난 봄 오픈 하고 조금씩 늘어 가던 손님은 메르스 사태 이후 급격하게 줄게 되었다. 이에 따라 파리도 어느 정도 줄었다.
이리 생각하니 파리 날리는 집은 그저 불결하고 장사 안 되는 집이라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어쩌면 주인이 파리 잡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집일 수도 있다. 우리 가게에 요즘 파리가 없는 것은 순전히 손님이 없을 때 파리채를 들고 설친 사장 때문이었으니 이런 억지가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나 저나 좀 귀찮긴 해도 파리가 늘어 손님이 더 온다면 파리도 언제든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