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육 정상화 대국민담화 발표하는 황교안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육 정상화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유성호
1929년 11월 3일 전남 광주에서 중학생(당시는 중·고등학교가 통합됨)들의 민족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조국을 위한 외침이 들불처럼 번진 그 날을 우리 역사는 '학생독립운동의 날', '학생의 날'로 부른다.
그로부터 86년이 흐른 2015년 11월 3일, "독재자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우리 정부가 세계사를 포함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정부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공안 검사' 출신의 황교안 국무총리는 정확히 오전 11시에 발표회장 카메라 앞에 섰다. 이례적으로 대형 티브이 모니터에 피피티(PPT) 슬라이드를 띄웠다. 국정화 추진의 배경과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기 위해 리허설까지 했다고 한다. 국정제는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한다. 이 발표를 명실상부한 대국민 '선전전'이라 말하면 지나칠까.
황 국무총리는 국정화 추진 이유로 기존 검정 교과서들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전체 학교의 99.9%가 편향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편향되지 않은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한다. 균형 잡힌 교과서로 아이들 교육을 바로잡겠다고 한다.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올바름을 판단하는가. '무엇'과 저울질해서 유지하겠다는 것인가. 그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의 '어두운' 역사가 학생들에게 '자학사관'을 심어준다고 주장한다. 긍정적인 역사를 서술해 민족적 자긍심과 국가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혹시 그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방송인 김제동씨가 적실하게 지적한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국정화"하겠다고.
'마음의 국정화'는 무섭다. 이는 김제동씨만의 괜한 엄살이 아니다. 교과서 국정화로 교실에서 자율성과 다양성이 사라지게 되면 아이들은 소극적인 '저항'의 몸짓을 냉소주의로 표출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나의 역사'를 강조하는 국정 교과서가 분석과 비판과 활발한 토론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생각 한 가닥이 의식 속에 자리 잡은 냉소주의적 아이들은 소수다. 대다수 아이는 국정 교과서의 획일적인 서술을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국정 교과서가 얘기하는 역사적 '사실'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학생은 '균형'과 '중립'과 '올바름'을 가장한 교묘한 진술에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그것은 고도의 정신 세뇌 기제다.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다. 자극적인 선전 문구와 역동적인 선동전을 통해 7000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최첨단 세뇌 정책을 펼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이다.
'부끄러움' 망각한 나치 독일, 국가주의 교육 때문미국 언론인 밀턴 마이어는 1954년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에서 유대인 600만 명의 학살 뒤에 100만에 이르는 나치 당원의 '광기'와 나머지 6900만 명에 이르는 평범한 독일인의 암묵적 동의와 참여가 있었다고 보았다. 이들의 '환상적인 조합'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밀턴 마이어와 대담을 나눈 한 지식인(언어학자이자 공학자)은 당시 '나치 교육'이 독일 국민이 인간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을 합리화하도록 도와주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무지했을 때보다 교육을 받았을 때 그런 합리화가 더 쉽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랬다. 히틀러의 '정신'은 시나브로 평범한 사람들 마음으로 파고들어 국가사회주의가 세상의 모든 악을 감소시키거나 근절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도록 했다. 마이어는 당시 독일인들의 애국주의적 '위선'이 국가나 국가 문화의 행위였음을 분명히 했다. 이 때문에 개인은 최소한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느끼지 않았으며, 그런 이유로 처벌받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마이어가 정확히 지적한 대로 그들은 '집단적 부끄러움'을 망각했다.
나치 치하 '문학' 교과의 주요 지침 중 하나는 "오로지 강력한 것만을 교육적으로 가치 있다고 간주함"이었다. 수업 주제는 "운명과 분투의 공동체로서의 국가. 생존공간을 위한 분투. 교련(육군·해군·공군). 영웅주의, 전쟁 시가(詩歌). 전설적 인물이자 도덕적 힘으로서의 세계대전 참전 용사. 국가사회주의적인 분투의 공동체. 지휘권과 동지의식"(277쪽) 들이었다.
역사와 생물학과 경제학의 프로그램은 문학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교과서가 아예 새로 써진 경우가 많았다. 나치는 국가의 입김이 미치기 힘들 것 같은 수학에도 손길을 뻗쳤다. 거의 모든 수학 문제가 탄도학이나 군사 배치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유대인 한 명이 500마르크를 12% 이자율로 빌려줄 경우"처럼 이자율 문제를 내 반유대인 정서를 조장했다. 튜턴, 로마, 슬라브 민족에 관한 인구 그래프 작성 문제를 내면서 "1960에 이들 민족의 상대적 크기는 얼마가 되겠는가? 거기서 튜턴 민족에게 어떤 위험이 감지되는가?" 따위의 문장을 통해 민족 감정을 자극했다.
2013년 우리 사회에 '역사 전쟁'의 서막을 연 교학사판 <고교 한국사>의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스탈린, 김일성, 박헌영이 공유하는 인식이 (기존-기자 주) 역사 교과서 서술의 기본 프레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집필진 중 한 명이었던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가 일제 침략과 독립운동의 양분법으로 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그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선의 선봉에 서 있다. 그들의 주장은 명확해 보인다. 일제 강점기를 침략과 침탈의 시기가 아니라 근대화와 자본주의화가 진행된 '발전기'로 보려는 것이다. 이명희 교수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일제 치하의 신사 참배와 같은 친일 행적은 선택의 하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의 싸움은 말 그대로의 '역사 전쟁'이다.
'다양성'과 '전체주의' 사이의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