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트 비엔날레 콕스바잘이 열리는 콕스바잘 공립도서관
Orchid Chagma
비엔날레 기간 동안 내내 항상 즐거운 일만 있고 파이팅이 넘쳐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며칠간 제대로 먹고 자지 못해 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더위를 먹었는지 두통이 심했고, 물갈이를 해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사실 밥 생각도 나지 않아, 물만 하루에도 3~4병씩 마셨는데 화장실 한 번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
하지만 주최 측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벵골어로 소통까지 가능한 우리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우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떤 연예인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방송국이나 신문사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우리를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안 돼', '못 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오랜 기다림 속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고 소중했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가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일에 "Yes"를 외치며 열정을 쏟아 부어 최선을 다했다.
한국 갤러리에서나 종이접기 갤러리에 찾아온 사람들은 설명해줄 자원봉사자가 있었지만, 항상 우리가 안내해주길 요청해 한시도 찜통 갤러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묻지 않고 아이를 세우고 인증사진을 찍는 부모님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작품과 물건을 선물로 요구하는 사람들 등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그렇게 하루에도 같은 일들이 수백 번 반복되면서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다.
그러다 사람들의 요구도 점점 심해졌고 도가 지나친 부탁을 하는 사람 중에 스태르들도 껴 있었다. 그들은 거절했음에도 반복해서 계속 요구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넘어섰다는 판단이 들자, 예술 감독인 라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불평불만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재상황은 전달해야 할 것 같았다.
외국인이고, 여자라 지나친 관심이 쏠리고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미리 신경 쓰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가장 일을 잘하는 친구 두 명을 붙여줬다. 그 두 명이 맡고 있던 일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우리가 어딜 가든 함께 있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괜찮다고 하고 다른 일을 하게 했지만 한 명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상미의 보디가드처럼 붙어 다녔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우리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모든 대답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당신들의 열정, 진심을 담은 행동, 모든 게 놀랍고 참 많이 배우고 있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 당신이 즐기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 같아요. 가끔은 벵골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라집이 조언해준대로 벵골어를 못하는 사람처럼 연기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과도한 부탁을 하는 사람들에겐 정확하게 거절을 했다. 지나친 친절도 우리를 위해 양보했다.
모든 것을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욕심은 조금 내려놓았다. 주위 친구들에게 도움도 요청하고 어떤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고 마음에도 다시 여유가 생겼다. 다른 갤러리를 돌며 작품을 감상하고 다른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넘치는 열정도 독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