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시골 산다

시골 마을 형님과 벌인 '짚단 날라 쌓아올리기' 한판

등록 2015.11.02 11:23수정 2015.11.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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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한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이 동상! 오늘 우리 일 좀 도와줘야 것어."

이른 아침에 울린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우고는 이런 내용을 전해온다. 내가 사는 흰돌리마을(경기 안성시 금광면) 형님의 전화다. 참고로 이 형님은 내가 잊을 만하면 "일 좀 같이 하자"며 간혹 전화 하시는 마을 형님 되시겠다.

마을 형님의 전화 한 통,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짚 수거 지금은 논바닥에 있는 짚들을 수거해서 경운기에 쌓아 올리는 중이다.
짚 수거지금은 논바닥에 있는 짚들을 수거해서 경운기에 쌓아 올리는 중이다. 송상호

솔직히 아침잠을 깨우는 것이 짜증난다. 나의 소중한 잠을 전화 한 통화로 날려버리는 형님이 야속하다. 거기다가 그 전화 내용은 일 도와달라는 거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 전화가 걸려온 곳으로 마음을 옮긴다. 세수하고, 정신을 차리고, 물도 마시고. 그렇게 몸을 워밍업한 후 현장으로 간다. 이렇게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끝까지 읽어보면 아시리라.


현장? 그렇다. 바로 울 마을 형님의 논이다. 논에는 짚단들을 부분적으로 조금씩 쌓여 있다. 형님은 벌써 나와서 혼자 힘으로 경운기 짚단을 실고 있었다. 이미 경운기의 절반 이상 짚단이 쌓였다.

"아따, 그 양반! 부지런도 하시네. 벌써 이만큼 하신규."


나의 너스레에 형님이 웃는다. 형님이 오늘 일을 벌이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신다.

"동상! 내일 비 온 디야."

형님의 작업 브리핑은 이 한마디가 다다. 형님의 이 한마디를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내일 비가 오기 때문에 오늘 미리 이 작업을 해둬야 된다. 짚이 비를 맞으면, 말리기도 더럽고, 거둬들이기도 더럽고, 갖다가 쌓아 놓기는 더 더럽고, 그렇게 쌓아 놓으면 속아 썩을지도 모르니 더 더러운 겨. 그러니까 비 오기 전에 동생이 좀 도와줘야 오늘 중으로 이 짚단을 옮겨 집 앞에 다 쌓아 놓을 수 있을 거야. 좀 도와주지 않겠나."  

이렇게 자세한 말을 형님은 참 짧게도 해주신다. 어쩌면 이렇게 짧게 말하고도 통하는 사이라면, 우린 참 가깝고 좋은 사이인가보다 싶다. 몇 년 전에 이사 온 나를 이렇게 인정(?)해주시는 형님이 한편으론 든든하다.

형님과 나는 열심히 경운기에다 짚을 날라 쌓아 올린다. 경운기 키의 세배 정도 높이 쌓아 올리면 한 짐이 된다. 가져간 줄로 꽁꽁 묶으면 출발 준비 완료다.

"탈탈탈탈......"

조용한 가을 아침 들녘엔 경운기 소리만이 무성하다. 휘청휘청 하지만, 절대로 짐이 넘어가는 법은 없다. 꽁꽁 묶은 줄 탓에 볏짐이 넘어갈 리가 없다. 더군다나 우리 형님이 얼마나 꼼꼼하신지, 줄 처리가 야무지시다. 60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왔으니, 베테랑 중 베테랑이시다.

형님 집 앞에 도착해 짚단을 하나씩 내려 쌓는다. 그렇게 쌓으려니 앞마을 작가 양반(이사 온 사람)도 왔다. 아마 형님이 전화로 불렀나보다. 지원군이 오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작가 양반이 경운기에서 짚단을 던져 올리면, 나는 그것을 받아 일하기 좋게 형님 앞에 놓자 주고, 형님은 그 짚단을 하나둘 정성스레 발로 밟으며 꼭꼭 쌓아 나간다.

"이건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녀. 급하게 해서도 안 되는 겨"

경운기 경운기의 세배가 되는 키의 짚단이지만, 흔든흔들 경운기는 잘도 간다. 고요한 가을 아침 들녘에 경운기 소리만 가득하다.
경운기경운기의 세배가 되는 키의 짚단이지만, 흔든흔들 경운기는 잘도 간다. 고요한 가을 아침 들녘에 경운기 소리만 가득하다. 송상호

형님의 강의가 시작된다.

"물매를 잡아감서 해야 되는 겨. 물매를 잡지 않으면 여기 중앙으로 물이 다 들어와서 짚이 썩는 겨. 그리고 항상 중앙은 높게 해야 되는 겨. 그래야 비가와도 바깥으로 떨어지는 겨. 사이사이는 빈틈이 별로 없어야 돼. 비가 와서 고이면 안 되는 겨."

내가 형님의 농촌 후계자도 아닌데, 구구절절 설명해주신다. 아침에 작업 지시할 땐 단 한마디로 갈음하시더니, 지금은 참 자상도 하시다.

그런가보다. 지금은 형님이 나에게 작업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나에게 설명하고 보여주시는 시간인 게다. 농사를 잘 모르는 아우에게 자신의 삶을 드러내놓고 자랑하시는 시간인 게다.

어쩌면 한 평생 농사지으며 살아온 자신에게 "너, 참 잘 살아왔다"고 칭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글 좀 쓰는 마을 아우에게 "아우!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어"라며 칭찬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주절주절 이야기 하는 형님이 귀엽게 여겨지는 건 왜 일까. 하하하하하.

우리가 팀을 짜서 짚을 올리고 있으니, 지나가는 직전 마을부녀회장님이 올려다보면서, 웃으며 한마디 하신다.

"체험비 내셔야 것어. 어디 가서 이런 체험을 한 대."

나도 받아친다.

"안 그래도 이 일은 즐거운디, 체험비 낼 생각을 허니 맘이 무겁구만유. 하하하하"

순간 마을형님도, 작가양반도, 전직 부녀회장님도, 나도 웃음바다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한나절을 경운기로 왔다 갔다 하며 그 많은 짚단을 쌓아 올렸다. 그러고 나니 어엿한 봉우리가 생긴다. 모양이 나온다. 우리 모두에게 보람이 우뚝 세워진다.

"팔순 노모의 감사 인사, 밥상 하나면..."

"작년에도 해주고 올해도 해줘서 월매나 고마운지 몰러."

팔순 노모(마을형님의)의 감사 인사 하나면, 나로선 감지덕지다. 모친이 안 계신 나로선, 마을 어머니가 곧 나의 어머니이니, 오늘 한나절 일하고 또 어머니의 칭찬을 듣는 횡재를 한 셈이다.

더군다나 팔순 노모가 차려준 밥상을 대하는 기쁨이라니. "차린 건 없어도 맛있게 먹어라"는 어머니의 인사는 항상 핀트가 맞지 않다. 실제로는 차린 것도 많고, 맛도 있다. 고봉으로 가득 준 밥이 어느새 모르게 후딱 사라진다.

짚단 쌓기 지금은 형님과 내가 팀워크를 살려 짚단을 쌓아 적가리를 만들고 있다.
짚단 쌓기지금은 형님과 내가 팀워크를 살려 짚단을 쌓아 적가리를 만들고 있다.송상호

그 맛난 점심을 먹고, 형님 집을 나서는 순간, 아침 잠을 깨웠다는 원망은 어디론가 날아 가버렸고, 대신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이 하나 가득이다.

이런 농촌공동체의 일을 체험하게 해주니 오히려 내가 '체험비'라도 드려야 할 판이다. 아침에 잠을 깨운 형님을 단박에 용서(?)하고 현장으로 온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다. 요즘 세상처럼 돈으로 사람을 사서 일을 시키는 게 다반사인데, 돈을 주고받지 않아도 정으로 사람을 부르고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사실 추수하고 나면 형님은 쌀을 찧어 갖다 주시기도 하고, 오이를 주시기도 하고, 고추를 갖다 주시기도 하니, 나에겐 분명 남는 장사다. 이건 일종에 오가는 정을 저축한 셈이다. 시골 사는 재미라고나 할까. 

'형님 그거 아십니까. 하늘의 날씨를 바라보며, 하늘의 변화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형님 같은 농민이 나의 이웃이라는 게 무척 자랑스럽다는 걸.'
#농촌살이 #시골 #짚단 #정 #흰돌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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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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