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겉그림
마녀의책장
"태워 줄까? 수학여행?" "……. 따돌려졌어요." "늘 그렇지만, 혼자 여행이 최고지. 차 돌릴까? 저거 너네 학교 차 맞지?" (10∼11쪽)
'언니는 막 피어난 꽃의 싱싱하고 분명한 향기보다, 은은하고 포근한 말린 꽃향기가 나는 사람 … 어느 사진작가 집을 방문했을 때 집에 가득했던 매화나무. 꽃차를 즐겨 만드는 언니를 위해 시골의 야생국화를 꺾어다 준 남자. 내가 마신 건, 사진을 찍어내듯 소중하게 말려져 봉인된 기억들이었어.' (43, 48쪽)오늘 아침에 '밑살구이'를 합니다.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처음부터 알맞게 썰어서 굽습니다. 밑살이라고 하는 고기를 먹은 일은 퍽 드물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곁님이 아기를 배거나 낳아서 몸을 돌보며 미역국을 끓이던 무렵 밑돈을 살뜰히 모아서 모처럼 한 번 밑살을 장만해서 쓰곤 했어요. 밑살을 구워서 먹은 일은 마흔 해 남짓 살며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으로 밑살구이를 아이들하고 먹었어요.
조주희님이 빚은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10) 넷째 권을 읽으며 아침으로 먹은 밑살구이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네 식구는 밑살 사백오십 그램쯤을 한 끼니로 깨끗이 먹습니다. 이만 한 무게라면 고깃집에 가서 먹으려 할 적에 돈을 꽤나 써야 했겠지요. 집에서 구워도 돈은 꽤 치른다고 할 만하지만, 나와 곁님으로서는 처음이요 아이들로서도 처음인 새로운 고기구이입니다.
자, 그러면 처음으로 먹어 본 밑살구이는 어떤 맛이었을까요? 자주 먹을 수 있다면 참으로 즐거웁겠네 싶도록 맛있더군요. 밑살구이를 하면서 불판 둘레에 고구마랑 당근을 함께 구워 보았는데, 고구마구이와 당근구이도 맛있습니다.
'뭐야, 짜증나게 탈북자가 뭐야. 전학생은 늘 한방으로 처리했는데. 쳇, 어쩔 수 없지. 없는 사람 치자. 뭐, 자기도 알아서 조용히 하잖아.' (58쪽)"내 어머닌 5년 전 함께 국경 넘다 강물에 빠져 죽었다. 내 아버진 2년 전 공안에게 붙들려 북조선으로 끌려갔고. 니 아나? 네 어머니, 아버지." (68쪽)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면서 오늘 짓는 이 밥 한 그릇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맛으로 스며들면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설거지를 하면서 오늘 지은 이 밥 한 그릇을 비운 우리 아이들은 어떤 기쁨을 몸이랑 마음에 담으면서 씩씩하게 놀까 하고 돌아봅니다.
밥이랑 국만 단출하게 차리기도 하고, 마당에서 뜯은 풀을 신나게 올리는 봄밥도 있고, 카레나 짜장을 하기도 하고, 부침개를 한다든지 달걀말이를 하기도 합니다. 손이나 품이 가는 밥은 잘 안 해 버릇하는데, 아이들은 늘 고맙게 밥상을 받습니다.
웃고 떠들고 놀며 딴짓도 실컷 하며 수저를 쥡니다. 큰아이는 왼손 젓가락질이랑 숟가락질을 하겠다면서 늘 용을 씁니다. 작은아이는 한 숟가락 뜨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놀고, 또 한 숟가락 뜨고 다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놉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스무 살이 되거나 마흔 살이 되면 저마다 어떤 밥을 손수 차려서 하루를 즐길 만할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나는 이 아이들이 차린 밥상을 받을 날이 있을 텐데, 그때에 이 아이들은 어떤 밥으로 기쁜 아침이나 저녁을 베풀어 줄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