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조르조네, '폭풍',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자연을 명확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운서양 회화사 최초의 풍경화라고도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박용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반라의 여인과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목동처럼 생긴 남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하늘 멀리 번개가 내려칩니다. 이 작품 이전에 자연을 이처럼 명확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작품이 없다고 해서 서양 회화사 최초의 풍경화라고도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등장인물들이 누구인지, 배경은 어디인지, 번개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수많은 해석과 억측을 낳은 한 작품이기도 하죠.
그림을 보면 인물들은 평온하기 그지없습니다. 왼쪽의 남자는 군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목동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옷을 벗은 여인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아담과 이브? 요셉과 성모 마리아? 아레스와 비너스? 그냥 평범한 목동과 집시 여인?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목처럼, 저 멀리 폭풍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번개가 섬광을 발하며 구름을 찢고 있습니다. 전면의 인물들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죠. 그런데 이 작품을 보자마자 나는 마치 작품 속 번개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다양한 도상 해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조르조네 자신이 다양한 해석을 예상하고 그린 작품이란 생각도 듭니다.
사실 이 작품은 그 도상학적 해석 못지않게 표현 기법도 중요합니다. 우선 인물을 비롯한 형상들이 윤곽선이 아니라 빛과 색채를 이용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예비 드로잉 없이 물감을 칠하면서 구상을 완성한 것이지요. 베네치아 화파 특유의 기법입니다.
그런데 그 색채는 화면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장치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전경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갈색과 붉은색은 초록의 중경을 거쳐 에메랄드빛과 청록빛의 원경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색채들이 장면에 따라 하나씩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면 전체에 통일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저 번개의 섬광이 있습니다. 그 섬광으로 하여 이 작품에는 대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대기가 식물들과 앞의 인물까지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번개의 빛이 화면 전체에 생명력을 부여해 주고 있는 것이죠.
말하자면, 조르조네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인물이나 의미를 위해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풍경과 인간을 하나로 생각하고 그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혁신적인 태도입니다. 위대한 미술사가 곰브리치에 의하면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원근법의 창안과 거의 맞먹는 새로운 영역을 향한 하나의 발돋움"입니다. 조르조네로 인해 "이제부터 회화는 소묘에 채색을 더한 것 이상의 의미"가 된 것이죠.
그런데 조르조네는 자신이 제기한 혁신의 성과를 꽃피우지도 못하고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흑사병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피렌체의 마사초처럼 말이죠. 하지만 조르조네의 성과는 심지어 그의 스승이었던 조반니 벨리니도 받아들였고, 이후 제자였던 티치아노에게 이어져 베네치아 화파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제, 베네치아 화파 전성기의 주역들을 만날 차례입니다. 방을 옮기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가장 큰 전시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3명의 거장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 거장의 그림, 실제로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