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가 주최한 '가난한 이들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원탁회의' 모습
4.16연대
나의 존엄과 안전은? 살면서 겪은 존엄 박탈과 인권 침해 경험에 관해 묻고, 세월호 참사와 내 삶의 연관에 관해 물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존엄과 안전이 지켜지는 데 필요한 권리를 물었다.
성동공고 노점상 주성근씨는 지난 여름 성동구청이 발주한 용역에 의해 행정대집행 철거를 경험했다. 당시 본인의 모든 것인 매대와 물건이 구청 집게 차에 의해 박살 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0월 6일 성동공고 앞 세월호 촛불 문화제와 풀뿌리토론을 하면서, 침몰한 세월호와 박살 난 나의 매대가 같은 신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홈리스행동' 회원 김종언씨는 IMF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고 건설일용직을 전전하다 거리생활자로 전락하게 되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눈물지었다. 지난 10월 8일에는 홈리스행동 회원들이 함께 모여 416 인권선언 풀뿌리토론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도 홈리스 당사자들은 위기에 처한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드러냈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자신들에게 사정없이 가해진 차가운 시선과 폭력의 경험들이 공통으로 있었고, 겨우 일어서려 했을 때 한계와 허점투성이인 사회복지 제도와 일자리 정책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현실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을 불안 속에서 떨게 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 속에서 이해했다.
최후의 주거지, 쪽방 주민의 현실도 다르지 않았다. 일방적인 강제퇴거에 맞서 싸워왔던 동자동 9-20 비상대책위 위원장 김병택씨는 세입자의 거주권보다는 건물주의 재산권을 옹호하기에 급급했던 서울시와 용산구 등의 잘못된 행정의 실체를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에서 오랫동안 묵은 부정부패, 정부조직과 돈 많은 사업가의 결탁을 읽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윤가브리엘씨는 올해 7월 국립의료기관을 정부가 '메르스 전용 병원'으로 지정하면서 그곳에서 치료받고 있던 에이즈 환자 11명이 쫓겨난 사례를 이야기했다. 특정 질환의 환자라고 해서 치명적인 질병이 창궐하는 때 대책 없이 환자의 생명을 내팽개치는 정책을 비판했다. 바닷속에 빠진 세월호에 갇힌 304명을 눈 뜨고 구경만 한 정부, 모든 요양병원이 거부해 갈 곳 없어 안전과 생명이 위태로운 에이즈 환자를 눈뜨고 구경만 하는 정부, 세월호 참사에 책임 안 지려 정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 에이즈 환자 요양병원 거부 문제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떠넘기기. 이 모든 상황이 한 맥락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김영희 공동대표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비롯한 복지제도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장애인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했다. 장애인들은 집안에서조차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곤 한다. 도움조차 청하지 못한 채 화마 속에서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이 있었다. 세월호를 보면서 '국가라는 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장애인이자 이 땅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 불안과 생존의 위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홍대에서 삼통치킨을 운영하는 맘상모 회원 이순애씨는 '골목 상권을 일궈온 것은 건물과 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한 우리인데'라며 돌연 세입자를 내모는 것을 정당화하는 법과 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내가 살아갈 권리보다 건물주의 탐욕이 우선인 사회가 지금과 같은 임대차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인식했기에 지금 이 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에는 아직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포함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았지만 친구들을 잃은 채 고3 수험생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생존자들, 이사를 가던 짐, 유일한 생계수단인 화물차를 잃는 등 삶의 전부가 망가져 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수색과 구조활동에서 죽어간 잠수사, 막대한 피해를 호소할 길조차 없는 진도 어민 등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속절없이 가라앉은 세월호를 지켜본 우리는 이웃 죽음의 진실을 알고자 했다.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법. 제도와 무지막지한 공권력, 피해 배·보상을 둘러싼 인격모독 속에서 참상은 더욱 깊어지고 우리는 모두 피해자로서 세월호 참사에 연루되어 버렸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은 필연적으로 우리 모두의 몫이 되었다. 가라앉은 내 삶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일과 세월호의 진실을 끌어올리는 일은 다르지 않게 되었다.
가라앉은 우리의 권리를 함께 끌어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