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둔에서 벼가 익어가고 있다
한정규
제방 길은 호수와 서둔을 가른다. 제방의 안쪽은 갈대와 억새가 공존하며 호수의 맑은 기운을 온몸으로 보여주듯 춤을 추고 있고, 제방 밖의 서둔에서는 봄부터 키운 생명이 결실을 기다리고 있다. 넓은 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색 물결을 이루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풍년가가 들리는 듯하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이곳에서 울려 퍼지는 풍년가 소리가 200년 이상 지속되었는데, 농촌진흥청이 이전하면서 서둔의 생존은 위기에 빠졌다. 만석거와 대유둔, 축만제와 서둔은 정조 시대에 설치한 국영농장으로 조선후기 농업 생산기반의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대유둔을 성공적으로 만들면서 정조는 자신 있게 개혁정치를 펼칠 수 있었고, 이를 전국적으로 보급하려 했었다. 만석거 아래 대유둔은 도시화로 인해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정조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수원의 마지막 보루는 서둔이며, 오늘날에도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 살아있는 중요한 유적인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둔은 지금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수원시민이 지켜내야 한다.
제방 길을 걸으면 큰 소나무 몇 그루와 만나게 된다. 큰 가지는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이지만 늘씬하고 멋스러움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세월을 초월한 듯 오늘도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 서둔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오고가는 길손을 반기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