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마 '기적의 소나무'. 그 주위를 방사능 폐기물이 둘러싸고 있다.
이두희
둘째날 측정 작업을 마친 뒤에는 쓰나미 피해가 컸던 가시마의 해안지역을 방문, 가시마 '기적의 소나무' 주변을 둘러보았다(흔히 알려진 리쿠젠다카타(陸前高田)의 '기적의 소나무'와는 다른 곳이다).
복구 작업을 통해 잔해 등은 상당히 정리가 된 상태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만이 남아 당시의 참상을 전해주는 듯했다. 그런데 그 참상을 전하기 위한 '기적의 소나무' 주변마저도 오염 물질의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이권세력의 비정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기적의 소나무' 가까이에는 도호쿠전력(東北電力)의 화력발전소가 있다. 이 발전소도 쓰나미로 건물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화력발전소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두고라도, 적어도 화력발전소 사고 때문에 피난을 한 주민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원전이 갖는 위험성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또 이 발전소의 발전 용량으로 후쿠시마의 소비 전력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 지역에 필요도 없는 원전이 일으킨 사고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입은 고통과 상처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에 대한 분노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이들미나미소마 시내의 쇼에고등학교는 원전사고 뒤에 학생들이 피난가는 바람에 더 이상 학생 모집이 어렵다고 판단, 마지막 졸업식을 갖고 폐교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현영주택이 지어져 오다카나 나미에에서 피난온 주민들이 생활하게 될 예정이다. 어떤 이들은 피폭을 피해 떠나간 지역이 어떤 이들에게는 피난처가 되는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 이것이 원전이 만들어낸 역설이고 차별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아니 왜 그런 지역에서 계속 살고 있는 거야? 아직도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건가?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 못차린 거야?"라고 쉽게 말할 지 모른다.
하지만 원전을 반대해도 찬성해도, 목숨이 위험해도 위험하지 않아도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피해를 당한 이들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가 아니라, 과연 누가 이들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였냐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강요한 이들은 다시 다른 곳에서 같은 선택을 강요하기를 멈추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