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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북스
'제주올레'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규슈올레'를 태어나게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규슈올레>(중앙북스, 2015)라고 하는 책에 찬찬히 담깁니다.
한국 제주에서 크게 사랑받는 관광상품을 일본에서 받아들인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굳이 제주올레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이어온 '걷는 나들이 문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애써 제주올레를 받아들이려 했다면, 일본 사회에서 오래도록 여러 사람들이 누린 수수한 문화를 넘어서, 이를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하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오늘날에는 관광이 '문화상품'이기도 하니까요.
규슈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바투 붙은 교통의 요지를 한국 여행사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이날 이전에 야메시에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시쳇말로 '일본 관광으로 먹고산다'는 여행사 사람에게도 야메는 지나치는 도시였다. (55쪽)깊은 숲을 헤집는 소위 산중 올레가 아니어서 가라쓰 코스의 흙길은 반갑다. 가라쓰시 공무원들의 노고가 길에서 팍팍 느껴졌다. (96쪽)여러 가지를 한자리에 놓고 헤아려 봅니다. '관광상품'하고 '문화상품'하고 '관광산업'하고 '문화산업'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둘레를 구경하거나 삶을 짓는 이야기를 상품이나 산업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오늘날 사회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그동안 상품이나 산업이라고 한다면 버스나 비행기나 기차나 배를 써서 사람들을 한꺼번에 싣고 나르면서 기념품을 사도록 이끄는 몸짓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이러다가 이러한 상품이나 산업이 '기념품은 없어도 되는' 흐름으로 바뀌면서 '관광객 스스로 여러 시간을 걷거나 하루를 꼬박 걷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할 만합니다.
여느 때에 잘 안 걷던 사람은 '아무리 멋진 올레길'이라 하더라도 두어 시간을 걷기 어렵습니다. 그저 수수하고 판판한 길이라 하더라도, 여느 때에 첨단 도시문명 혜택을 받으며 살던 사람들은 이 길을 잘 못 걷습니다.
걷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걷다가 지치지요. 걷다가 지치면 '아무리 멋진 올레길'을 걷더라도 둘레를 살피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규슈올레>에 나오는 일본 규슈 올레길은 '가게 하나 나오지 않고 여러 시간 걷는 길'이 꽤 많다고 할 만합니다.
마실거리랑 먹을거리를 가방에 짊어지면서 여러 시간을 걷다가 마땅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 나들이가 될 텐데, 이러한 관광상품은 도시 사람한테 얼마나 기쁘거나 새로운 나들이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이런 나들이는 예부터 누구나 들놀이나 바닷놀이를 다니면서 수수하게 즐겼어요. 관광상품이 없었어도 다니던 들놀이요, 문화상품이 아니어도 누리던 바닷놀이입니다.
벳푸 코스는 흙을 밟는 길이다. 지난 계절의 낙엽을 밟는 길이고, 보드라운 흙을 디디는 길이다. 흙을 밟는 길이어서 발이 편한 길이다. 일행 중 일부는 오르내리는 구간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발이 편해서 힘든 줄을 몰랐다. (111쪽)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힌 마을,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어 갇힌 마을, 젊은이는 떠나고 어르신만 남아 허전한 마을이 오쿠분고 코스가 거치고 들르는 마을이다. (1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