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망대에서 본 순천만 풍경
김선태
순천만(정식명칭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남북 30km, 동서 22km의 연안습지이다. 풍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높이 92m의 야산 용산의 용산전망대으로 가야한다. 산을 오르며 김승옥이란 작가에 대해 생각했다.
김승옥 작가는 산문집 <내가 만난 하느님>에서 그의 성장 과정을 밝혔다. 1948년 그가 여덟 살 국민학교 1학년때 여순사건에 휘말려 많은 사람이 총살되었다. 그의 아버지도 이 사건으로 돌아가셨다. 3년 후 여동생이 열병으로 세상을 떴다. 인간이 죽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란 사실이 그의 인생 문제가 되어 그를 괴롭혔다. 60~8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을 겪으며, 문인과 예술가들의 박해를 보며 고통에 빠져 절필했던 순간도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어머니가 요즘 무신론자가 되어 가는 젊은이들을 걱정하며 그에게 기도를 멈추지 말라고 했던 부분이 생각났다. 용산전망대에서 신이 빚은 풍경을 김승옥이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순천만은 '방바닥에는 비단방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화투짝이 흩어져 있었다'라는 무진기행의 문장이 떠올랐다. 실재로 그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무진을 빚은 신의 의도도 대신 들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순간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를 사랑하며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신앙을 되찾는 장면을 떠올렸다. 하인숙을 사랑한 로쟈를, 소냐를 사랑한 김승옥이 안개라는 이불 속에서 함께 뒹구는 모습도 떠올랐다.
산을 내려와서도 우리는 한참 순천만을 맴돌았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서야 그곳을 빠져나왔다. 순천만 입구 근처에 자리한 무진식당이란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한정식을 먹다가 순천특산물인 순천막걸리를 마셨다. 무진의 명산물이 안개만이라는 소설이야기는 거짓말이었다. 구수한 순천막걸리에 게장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께 무진기행을 선물했다. 마지막으로 순천만의 노을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에서 순천행 버스를 기다리다가 무진기행의 다음 구절을 낭독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순천역에서 오래 머물고 싶어 야간열차를 탔다. 야간열차에서 순천의 풍경을 붙들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밀집모자를 벗지 않는 마지막 일탈을 즐겼다. 새벽에 도착한 수원역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나에게 무진은 현실이었고 김전무란 가짜 이름도 내 이름이었다. 나를 찾는 첫 번째 문학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