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도 샐프추가 반찬은 셀프입니다.
전병호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4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 자영업자 생존율은 16.4%라고 한다. 매년 문을 여는 점포 100만 개 중 80만 개가 폐업하는 꼴이다. 특히 음식업 생존율은 겨우 6.8%라고 하니, 오늘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수많은 음식점 중 90% 이상이 폐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현실의 뿌리에는 지나치게 많은 자영업자 수, 높은 임대료와 장기적인 내수 침체 등 치명적 악재가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 정부의 무능과 무관심이라는 이 나라의 고질병도 존재한다. 대부분 자영업자들이 아사 직전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게 현상 유지조차 힘든 상황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사람 한 명 안 쓰고, 본인 노동력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택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바로 '물은 셀프'다.
세계 여러나라 중 우리나라처럼 식당 벽에 "물은 셀프"라는 문구가 많이 붙어 있는 곳도 없을 듯하다. 오죽하면 물을 영어로 '셀프(SELF)'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 유머로 떠돌겠는가? 이처럼 '셀프제' 속에는 이 나라 자영업자들의 고단한 현실이 묻어 있다.
하긴 요즘은 물만 셀프가 아니다. '셀프 빨래방', '셀프 인테리어', '셀프 주유소', '셀프 세차' 등 셀프가 대세다. 정치권에서도 얼마 전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이 셀프디스(selfdiss)로 홍보 캠페인 벌이고, 정부는 말이 많았던 국정원 개혁도 자체적으로 한다고 하여 '셀프개혁'이라는 말이 탄생했을 정도다. 바야흐로 '셀프의 시대'다.
셀프의 시대라고 적고 나니,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퍼졌던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함)이란 말이 겹쳐진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 이 말은 더욱 피부에 와 닿았다.
국가 재난 상황에서도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관심있는 정치권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정부를 보면서 절망했다. 손님은 하루가 다르게 푹푹 줄어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이 말밖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각자도생. 나아질 조짐이 없는 이 암울한 불황 속에서 자영업자는 그냥 스스로, 알아서, 셀프로 살아 남아야 한다.
이 셀프의 시대에서, 힘 없는 영세 자영업자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우리 국수 가게도 셀프의 시대에 동승하련다. 어르신들이 뭐라고 해도 우리 국숫집은 당분간 물은 셀프요, 반찬도 셀프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셀프의 시대라지만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가족사를 위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 하려는 역사관이 올바르다고 우기는 마이 '셀프'(Myself)는 좀 과하지 않은가?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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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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