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한테 '나이에 맞추어 말걸기'를 슬기롭게 할 수 있어도 즐겁고, '나이에 맞추지 못하더'라도 늘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말을 걸면, 차근차근 말을 배울 뿐 아니라 글도 익혀서 스스로 책을 볼 수 있습니다.
최종규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이라는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모두 알던 이야기입니다. 어버이는 아기한테 어떤 말을 걸까요? 오직 사랑으로 말을 걸지요. 아기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요? 아기는 어버이한테서 오직 사랑스러운 말을 듣고 싶지요.
아기는 때가 되면 스스로 말문을 터뜨립니다. 한두 살부터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고, 다섯 살에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으며, 열 살쯤 되어서야 비로소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어요.
어버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버이는 오직 한 가지만 할 뿐입니다. 언제나 아이를 사랑으로 지켜보면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사랑으로 기다립니다.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사랑 하나면 되는 어버이입니다.
다만, 사랑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아야겠지요.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입으로만 '사랑해' 하고 말한들 덧없습니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고 강요가 아닙니다. 사랑은 훈육이 아니며 길들이기가 아닙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은 사탕발림이나 선물꾸러미가 아니에요. 사랑은 그저 따사로운 손길과 너그러운 품입니다.
물론 기저귀를 가는 일은 부모에게도 썩 유쾌한 일입니다. 당연히 기저귀를 가는 도중에 "참아!"라며 강하게 말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31쪽)나는 우리 집 두 아이를 거의 혼자 도맡아서 돌보며 살아오는 동안 '똥오줌 기저귀' 가는 일이 '안 유쾌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두 아이를 오직 천기저귀만 대면서 날마다 마흔일곱 장을 빨아야 하던 날에도 씩씩하게 웃고 노래하면서 손빨래를 하고, 해바라기를 시켜서 말린 뒤, 다림질을 하여 곱게 갰어요. 아이가 오 분 만에 쉬를 찔끔찔끔 지리더라도 새 기저귀로 갈아 주면서 '요 녀석, 네 아버지가 더 기운내라고 하는구나' 하면서 궁둥이랑 볼을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아이키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곁님이 여러모로 미리 살펴서 차근차근 알려주지 않았으면 하나도 제대로 못 했으리라 느낍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어디에서도 '육아 교육'조차 하지 않고, '성교육'조차 슬기롭게 하지 않아요. 나라에서는 젊은 부부더러 아기를 낳으라고는 하지만, 정작 아기를 어떻게 낳아서 돌볼 때에 아름다운 사랑과 삶이 되는가 하는 대목은 들려주지 못합니다.
김수연님이 쓴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은 재미있습니다. 이제 우리 집 큰아이는 여덟 살이고 작은아이는 다섯 살입니다. 다섯 살 막바지를 지나가는 작은아이를 헤아리며 이 책을 읽으니, '아이를 키우는 힘'이나 '아이한테 말을 걸며 키우는 힘'은 딱히 없습니다. 그저 어버이로서 내가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하루가 되면 됩니다. 아이한테 말을 입으로도 걸지만 마음으로도 걸지요. 아이한테 들려주는 노래는 '유치한 동요'가 아니라 '어버이인 내 마음을 함께 달래며 보듬는 사랑노래'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다 다른 노래를 불러 줄 수 있습니다.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붙어서 여덟 해를 살고 보니, 그야말로 스스로 노래꾼이 되고 춤꾼이 됩니다. 새삼스레 이야기꾼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