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하대리(전석호 분)와 안영이(강소라 분).
CJ E&M
지금 일하는 회사가 도영에게는 첫 직장이다. 말이 좋아 '인턴'이지 교육이나 경험은커녕 온갖 잡무만 다 담당하는 인턴 생활을 두 번 거친 후, 되는대로 몽땅 지원한 15개의 회사 중 딱 하나 붙은 곳이다. 그런데 5주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부서에 배치된 첫날부터 줄곧 도영은 '여자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제가 입사를 딱 하고 연수를 끝내고 이 부서에 처음 들어왔는데 차장이, 우리 차장은 아니고 옆 팀 차장인데 하는 말이 '우리 회사는 여자가 승진이 안 된다. 알고 시작해라.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지 않겠느냐' 이런 말부터 했어요. 그거부터 저는 좀 충격이었죠.
그리고 그다음 회식을 갔는데 하는 말이, '원래 내가 널 안 받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네가 왔다. 원래 남직원을 원했다'는 얘기를 부장이 하더라고요. 왜 굳이 우리 회사에 여자가 들어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대놓고 말을 했어요.""우리 회사가 너무 성차별적이고 부당한 게 많다 그랬더니, '그건 맞는 이야기인데, 앞으로도 안 바뀔 거다' 그러는 거예요."도영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여주기도 전에 '여자'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했 다. '여자'라는 사실은 당장 도영이 바꿀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그렇기에 상사들이 던진 말은 회사와 일에 대한 기대를 꺾게 만든다. 첫 직장에서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조건으로 인해 부정적인 대우를 받았다면, 앞으로 다른 직장에서는 그러지 않을 거라 기대하기보다는 직장과 일에 대한 기대치 자체를 낮추게 되는 것이다.
상사들은 도영에게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 된다"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도영을 회사에 잘 적응하고 '성장'하도록 도와야 할 신입사원이자 동료로 대하지 않고, 머지않아 결혼하고 그만둘 '여자'로 여기고 있다.
"맨날 회식 시간에 상사가 와서 '너는 아빠가 돈도 잘 벌고 그러는데 왜 굳이 회사 생활하냐, 살림이나 하면 됐지. 그리고 결혼은 언제 하니, 남자친구랑은 어떻게 지내?' 맨날 그렇게 꼬치꼬치 사생활 캐묻고."한둘도 아니고 도영이 회사에서 접하는 많은 상사가 매일같이 도영에게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초반 3개월, 도영은 매일 울며 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적응한 자신이 오히려 무섭다.
"여기 좀 이상한 데예요. 진짜 미쳤어요. 제가 초반 3개월 동안에 맨날 울었어요. 회사 가기 전에 울다가 가고... 지금은 사람이 또 신기하게 적응을 해서 다니는데, 저 자신이 무서워요.."여자는 출장도 못 간다 '여자는 안 된다'는 말은 상사들이 그저 개인적인 편견에 기초해서 하는 '말'로 그치지 않았다. 도영이 다니는 회사는 '여직원'이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려운 형태로 굴러가고 있었다.
도영이 속한 파트는 해외영업팀이다. 해외 거래처와 소통하면서 수출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처리하는 것이 주 업무다. 영어를 잘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도영에게는 어쩌면 잘 맞는 업무일 것이다. 일은 만족스러우냐는 질문에 도영은 "사원인데 할 수 있는 게 많고, 너무 싫거나 무의미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 할 만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더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빼앗기고 있었다.
영업의 핵심은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중간에서 일이 잘 돌아가게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도영에겐 자신이 속한 파트에서 성장하기 위해서 습득해야 할 능력을 배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출장을 통해 거래처들과 직접 대면하며 소통하는 기회, 공장에 직접 가서 자신이 영업하는 물건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알고, 자신이 중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도영이 자신의 업무에서 경험을 쌓는 데 핵심적인 일이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상사들은 도영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출장에는 여자를 안 데려갈 거래요. 그냥 자기는 여자가 출장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고.""어떤 대리는 제가 공장에 가서 사람도 좀 만나면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왜 네가 굳이 가느냐. 여자가 가봤자 무슨 임팩트가 있느냐"며 막아서 못 갔어요."직급이 낮은 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