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모습.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옛날 백성의 대부분은 선비·농민·공업기술자·상인으로 분류됐고 이 중에서 선비는 현실적 돈벌이를 떠나 나라를 다스리는 데만 전념했다는 이미지가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다. 이렇게 우리는 선비 출신 관료들이 돈벌이와 무관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공식적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선비 출신 관료들의 대부분은 노비를 동원해서 농토를 경작하는 지주였다. 농업경제 시대의 지주는 지금의 기업체 사장이나 임대용 빌딩의 소유자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의 돈줄을 공식적으로 쥐고 있었다.
이 점은 지금 SBS에서 방영되는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는 정도전이나 정몽주를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런 신진사대부들은 중소 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지주계급이었다.
신진사대부 집단은 대규모 부동산을 소유한 권문세족 집단과 싸워 정권을 획득했다. 그래서 신진사대부와 권문세족의 싸움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소 지주' 대 '대지주'의 싸움이었다. 두 그룹은 각종 정치적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런 대의명분 뒤에는 물질적 욕망도 숨어 있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신진사대부는 권문세족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인수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조선왕조를 창업했다.
관료가 곧 지주였다는 점은 조선 시대 역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부터 조선 초기 사이에는 경기 지방 토지를 전·현직 관료에게 지급하는 과전법이 시행됐다. 그러다가 세조 때부터는 현직 관료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이 실시됐다. 그 뒤 성종 때부터는 토지 대신에 월급을 지급하는 관수관급제가 실시됐다.
15세기 후반인 성종 때부터는 관료들이 월급을 받았지만, 그 이전의 관료들은 나라에서 받은 토지에 노비 출신 소작농들을 투입해 농업 경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종 이전의 관료들은 명확한 지주였다. 성종 이후의 관료들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월급을 받았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원래부터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성종 이후에도 관료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지주였다.
농업경제시대에는 지주가 사회의 지배자였다. 이들은 자기 시대의 최첨단 산업을 경영하는 기업인들이었다. 옛날 관료들은 지주를 겸했다. 이들은 출근하면 관료이지만 퇴근하면 농업 경영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머릿속으로 항상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노비 출신 소작농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금년 농업생산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이들의 머릿속을 떠날 수 없었다.
물론 관료가 된 지주들이 농업경영의 일선에 직접 나설 수는 없었다. 이들은 가족이나 최측근 노비에게 경영을 맡긴 뒤 그들을 통제했다. 그러다가 관직에서 물러나면 자신이 직접 농업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회사 경영을 다른 이에게 맡겼다가 재선에 실패한 뒤 기업 경영에 복귀하는 오늘날의 정치인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이처럼 선비 출신 관료들은 농업 경영인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돈벌이에 신경 쓰지 않는 선비', 조작된 이미지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