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서류담당,대리,팀장으로 구성된 결재란의 마지막을 채우기 위해 팀장이 아니었던 과장님께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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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품질경영팀 수입검사실로 발령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PCB 검사 성적서'를 결재 받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 갔다. '담당-대리-팀장'이라고 쓰여 있는 결재 서류를 들고 김 대리님을 찾아가 결재를 받았다. 그리고 '팀장'란에 결재를 받기 위해 신 과장님을 찾았다. 그런 나를 발견한 수입검사실 동료 여직원이 나를 데리고 나와서 물었다.
"너 누구더러 팀장이라고 하는거니?"대리가 팀장, 과장이 팀원... "지역 파벌 때문에"그 질문에 나는 당당히 "신 과장님!"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동료 여직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신 과장님이 아니라 품질경영팀 팀장님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신 과장님을 뵐 때마다 '팀장님'이라고 불렀는데 그 호칭을 들은 과장님이 얼마나 민망하셨을지 생각하니 죄송스러웠다.
우리 회사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나뉜 '지역 파벌'이 있었다. 처음 회사를 창립하고 개발 용역만 해오던 회사가 자체 생산 공장을 처음으로 설립했던 곳이 전남 무안이었다. 그렇게 무안에서 규모를 키운 회사는 경북 김천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 했다.
당시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부터 핵심 멤버들이 모두 대우전자 출신인 걸 생각하면 대우전자 VCR사업부가 있던 구미 공장에서 가까운 김천으로 이전 하는 것이 주변 인프라를 활용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김천으로 확장 이전을 하면서 대우전자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카우트 되어 우리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나를 수리사로 키우고 싶어 하셨던 생산팀장 백 차장님도 나의 멘토 신 과장님도 그 중 한명이었다. 그렇게 무안에서부터 함께 해오던 전라도 멤버들과 대우전자에서 스카우트 되어 온 경상도 멤버들이 자리 싸움을 시작하면서 '지역 파벌'이 생겨났다.
원래 품질경영팀장 자리에는 무안에서부터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해온 전라도 출신 최 차장님이 계셨다. 그런데 최 차장님은 대우전자 수리사 출신인 권 조장님과 함께 영상사업본부장인 김 상무님이 대표 이사로 겸직하고 있는 외주 업체 '공장장'으로 발령이 났다. 내가 우리 회사에 입사했을 때 최 차장님은 이미 자리를 옮긴 후라 나는 차장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최 차장님이 외주 업체로 자리를 옮기면서 '임시 팀장' 자리를 차석인 신 과장님께 넘기지 않고, 그 다음 차석인 같은 전라도 출신 박 대리님에게 넘겼다고 한다. 그렇게 최 차장님이 떠난 품질경영팀은 대리가 팀장이고 과장이 팀원으로 있는 이상한 모양새의 팀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나이도 신 과장님이 한살 더 많으셨다.
이런 히스토리를 알고나서 보니 내가 '팀장님'이라고 호칭을 잘못 사용해 신 과장님이 얼마나 불편하셨을지 짐작이 됐다. 내 얼굴이 화끈 거렸다. 그 뒤로 나는 별말 없이 은근슬쩍 '과장님'으로 호칭을 바꿔 부르고, 결재 서류를 과장님께 가져 가지 않았다. 과장님도 나도 서로가 민망해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