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암돈대에서 서해낙조를 바라보는 다정한 부부
전갑남
가을이 깊어간다. 들에서 시작된 가을이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누렇게 익은 황금벌판이 콤바인의 서슬 푸른 칼날에 잘려나간다. 빈 들판의 허허로움을 달래려는 듯 산은 형형색색의 고운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한다.
한낮의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는 오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가을 들길의 여유로움옅은 안개가 내려앉은 지난 토요일 오후다. 감나무에서 손에 닿은 노란 감 몇 개를 따고 있는데, 핸드폰 소리가 요란하다. 주말 행사가 있어 출장 다녀오는 아내다.
"나, 금방 도착해요. 도착하면 들길 자전거 타는 거 어때요?"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요즘은 해가 짧아져 직장에 다니는 아내와 함께 자전거 타는 게 어렵다. 해가 떨어지려면 시간 반 정도는 남은 것 같다.
감을 한 접 남짓 땄다. 노란 감이 가을색이다. 땡감이라 칼로 깎아 곶감을 만들면 간식으로 그만이다.
아내 차 들어오는 소리가 반갑다. 나는 물병을 챙기고, 카메라를 챙겼다.
"당신, 카메라는 왜?""오늘 낙조 사진 한 방 찍을까 해서. 해무가 끼어 해넘이가 볼 만할 것 같은데.""그럼, 굴암돈대로 가볼까요?""어쩜 내 생각과 같을까!"돈대에서 해넘이 구경? 색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직 서쪽 하늘에는 해가 많이 남았다.
가을 추수가 한창이다. 고개 숙인 벼이삭이 바람에 출렁이며 황금색 물결을 이룬다. 황금들판이란 말이 어울린다. 들판 색깔로 보면 요즘이 그야말로 농번기이다. 그런데, 간간히 들리는 콤바인 기계음이 들릴 뿐, 한가하다. 세상이 바뀌어도 이렇게 바뀌었을까?
자전거 전용도로에 들어섰다. 아내의 자전거페달에 더욱 힘이 실린다. 뒤 따르는 내가 벅차다. 어느새 굴암돈대 이정표가 보인다. 아내가 서쪽바다 해를 바라보다 멈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