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례씨 부부 침실과 작은 아들의 방이 들어서 있는 생활공간.
송성영
매끈한 황토 바닥에 얇은 천이 깔려 있는 그의 방안에는 아궁이 지피는 온돌은 말할 것도 없이 아무런 난방장치도 없다. 흙벽과 흙바닥은 분명 여름에는 시원할 것이다. 하지만 2천 고지에 가까운 북인도 코사니의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싶어 그에게 물었다.
"난방장치도 없이 겨울에는 춥지 않습니까?" "노 프라블럼!" 그의 생활공간을 세세하게 둘러보면서 고산지대에서 난방장치도 없이 겨울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약간은 풀렸다. 외벽이 보통 벽보다 두 배 이상으로 두터운 흙벽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층은 소와 양이 머무는 가축들의 공간이었다. 축사의 천장은 그의 가족이 잠자는 방바닥이었으니 가축들에게서 나오는 열기가 전달될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추운 겨울을 난방장치 없이 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난방장치가 있을 것이었지만 서로 영어가 짧아 더 이상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고산지대에서 자연에 순응해 가며 온몸으로 습득한 수 천 년의 지혜가 함축되어 있는 어떤 생활 방식이 있을 것이었다. 저 생활공간에 갑작스럽게 자본이 들어와 안락한 현대식 공간으로 바뀐다면 분명 어떤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 갑작스런 변화는 이렇다 할 난방장치 없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몸의 균형을 뒤흔들어 놓게 될 것이었다.
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충남 공주 시골 마을에서 10여 년을 생활하면서 '이제 겨우 살만 하니 병들어 돌아가신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 노인들은 대부분 허름한 흙집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오다가 번듯한 콘크리트 양옥집에서 말년을 보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 잘 둔 덕분에 먹고 살 걱정 없이 평생 해왔던 농사일에서 손을 놓았다. 도시 사람들처럼 기름보일러 팡팡 돌려가며 웃풍 없는 안락한 방안에서 하루 종일 방영하는 위성 텔레비전을 친구삼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 갑작스럽게 바뀐 안락한 환경은 오히려 독이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내 병원신세를 지게했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밭일을 하는 걸 보았는데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다'는 부고장이 날아오곤 했다. 하지만 생활공간과 환경이 바뀌면서 '이제 겨우 살만하니까 고생고생 병원 신세를 지다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장이 더 많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허름하고 비좁은 생활공간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내내 웃고 있는 인도의 농부 지례씨, 그를 보면서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돈과 명예 따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 않고 자연에 순응해 살다가 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야 말로 한평생 잘 살다가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촌 동생 아이도 자기 자식처럼 돌보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