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 성북구청에서 '마을 결혼식'을 올린 이서영·송주민 부부.
안홍기
천편일률적 '스드메', 20분 예식, 뿌려 놓은 축의금 걷기, 눈도장 찍기식 참석 등 허례허식 결혼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특별한 결혼식을 치른 열 쌍의 커플 이야기. 주인공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았던 예식을 소개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격려를,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이들에겐 기대를 안겨주고자 한다. - 기자 말
앞마당에 멍석 깔고 가마솥 걸어 밥 짓고 전 부치고 방방마다 상 차려 잔치를 벌였던 옛날 결혼식은 옆집 앞집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마을 결혼식이었다. 지금 서울에서도 그런 결혼식이 가능할까?
일단, 예식을 올리고 잔치를 할 널찍한 마당이 없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공동주택이 보편화된 지금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장소도 문제지만 일손도 많아야 하고 식재료 조달부터 조리장소까지 복잡다단한 과제가 쌓여 있는 잔치음식 마련을 생각하면 더 갑갑해진다. 결국은 전문 업체를 불러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구청 강당에서 '마을의 힘'으로 올린 결혼식지난 9월 19일 이서영·송주민 부부는 마을에서 마을의 힘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장소는 서울시 성북구청 4층 강당과 구내식당. 성북구에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이기에, 구청 강당은 혼인잔치 할 '앞마당'으로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잔치음식도 마을에서 해결했다고?
예식장 입구에 걸린 안내문에 해답이 있었다. 안내문 아래 절반은 결혼식을 도운 이들의 명단으로 가득 찼다. 기본 상차림과 냉채·잡채 등 잔치음식은 반찬가게와 봉사단체가 맡았다. 저소득층 일자리 제공을 위한 자활기업과 소외된 이웃에 반찬을 만들어주는 단체다. 과일·한과와 와인은 친환경 식재료를 공급하는 생협에서 공급받았다.
잔치음식뿐 아니라 신부의 면사포, 메이크업 주선, 꽃장식, 영상촬영 등 결혼식을 돕는 이들의 명단이 무슨 TV 드라마 끝날 때 나오는 자막처럼 길다. 하나같이 마을만들기 활동을 하면서 관계를 맺게 된 성북구·강북구 안의 곳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