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쉼터 현황판에 적힌 보호자 연락처가 눈에 띤다. 서로 안부를 살피며 건강 등에 이상이 생길 경우, 곧바로 자녀 등 보호자에게 연락 할 수 있다.
소중한
대한민국 노인들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농촌은 농촌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각각의 사정에 따라 홀로 노년을 보내는 이들이 많아졌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3%. 2023년에는 그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돼 독거노인 문제는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혼자 사는 노인들끼리 모여 산다면 어떨까. 밥도 같이 해먹고, 잠도 같이 자고, 이곳저곳 함께 놀러 다니고…. 낮에 잠깐 경로당에서 만나는 친구가 아닌 언제든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가족이 된다면 어떨까. 이 고민에서 공동주거 공간이 탄생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라는 의미의 9988쉼터. 순천시가 쉼터를 처음 계획한 건 지난 2013년이다. 마을 경로당 한편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24시간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매월 난방비 20만 원과 부식비 4만 원(1인당), 쌀 20kg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처음 쉼터에 선정되면 평균 500여만 원을 지원했다. 전자제품·침구류 구매와 도배 비용 등인데, 이는 평소 경로당 지원비로 충당할 수 있어 추가 비용은 아니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9988쉼터는 42개로, 노인 305명이 생활하고 있다. 지난 9월 8일, 순천시 서면 지본마을 9988쉼터를 찾았다. 방에 들어서자 가지런히 정리된 이불과 할머니들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방 한쪽 벽면에는 9988쉼터에 사는 노인들의 이름과 연락처, 보호자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게시판이 붙어 있었다.
지본마을 이이남(79) 할머니는 "밥도 같이 해먹고, 드라마도 같이 보고 안 심심해서 좋다"며 "처음엔 서로 달라서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이제 다 적응해서 가족 같이 지내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할머니는 거듭 "안 외로워서 좋다"고 강조하며 "자식들도 다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객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내 어머니, 아버지를 다른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겠나. 혈압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다른 할머니가 발견해 급히 119에 신고, 목숨을 건진 사례처럼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복지다.
김청수 순천시 사회복지과장은 "어르신들 특성상 자식들에게 어디 아프다는 말을 잘 안 하지 않아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쉼터에서 어르신들끼리) 서로 보고 있으면 행동이나 상태가 이상한 걸 보고 병이 있는지 알아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 과장ㅇㄴ "얼마 전 한 어르신이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의사가 '머리에 물이 차 있어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노인복지를 위해 큰돈을 들여 별도로 복지관을 짓곤 하는데 9988쉼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 예산을 대폭 아낄 수 있다"라며 "현재 42곳인 9988쉼터를 2018년까지 1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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