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보자마을학교'의 <사람책> 수업
박선민
10월 8일, 드디어 수업이다. 일곱 명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다행이다. 딴청을 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 학생들에게 <사람책>에서 내 강의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정말 궁금했다.
"정치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보좌관이 하는 일이 궁금해서요." "사람책 소개 자료에 나온 보좌관, 국회, 정치, 정당, 민주주의. 이 말 보고요.""정말 그게 궁금해요?" "네!""재미없는 수업을 택해줘서 고마워요. 재미있는 수업이 되도록 노력해 볼게요." 약간 불안해서 덧붙였다.
"음, 혹시 별로 재미없더라도 무조건 재미있었다고 소문내자. 어때요?""네!"학생들이 웃어준다. 됐다. 보좌관이라는 직업이 궁금해서 온 학생들이다. 보좌관이라는 직업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사람이고,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일하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우리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뒤에서부터 거꾸로 설명할 생각이다.
스웨덴 이야기로 시작했다. 스웨덴은 공공아동수당 제도가 있어서 태어나서부터 16세까지 누구나 한 달에 약 18만 원씩 받는다. 16세가 되면 20세까지 같은 액수를 학업 보조금으로 받게 된다. 대학 학비도 무료다. 대학생들은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상환의무가 없는 학업비 보조와 상환의무가 따르는 장기저리 융자금을 더해 학기 중 8개월 동안 매달 134만 원 가량을 받을 수 있다.
교육비가 무료이고, 수당도 주는데 대학 진학률은 우리나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대학을 안 가면 뭐할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보통 1~2년 정도 쉬면서 여행을 떠나거나 직업 경험을 하며 진로를 탐색한다.
취업을 할지 진학을 할지 전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한다. 여러분과 같은 청소년기부터 자기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정치 활동을 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정당에서 '청소년 여름캠프'를 진행하는 데 여기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정당의 청소년 조직 출신 인물이 지방의원을 하고, 국회의원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선거운동을 못 한다니..." 어이가 없다는 아이들다음으로 정당에 대해 설명했다. 알고 있는 정당을 다 적어보라고 했다. 새누리당은 모두 맞췄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맞춘 학생도 있고, 민주당이라 말한 학생도 있다. 민주당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자 언제 이름을 바꾸었느냐며 굉장히 억울해했다. 노동당, 녹색당 이름도 나왔다. 들어봤다고 한다. 통합진보당도 나왔다! 해산된 정당이라고 하니까 정당을 해산 시킬 수도 있느냐고 묻는다. 정의당은 나오지 않았다. 원내정당과 원외 정당에 대해 설명해주고, 정의당을 알려줬다. 처음 들어 본다고 한다. 중학생 일곱 명의 대답을 보편적 인식이라 해석할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정당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나라 정당은 정당법에 규정되어 있는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매우 높다. 중앙당은 서울에 두어야 하며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갖춘 시도당이 5개 이상 있어야 한다. 지역 정당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당법으로 정당 설립 요건을 규제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외국은 '정당'을 정치적 의견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정치단체로 간주하기 때문에 정당 설립과 활동은 상당히 자유롭다. 시민들이 지지하지 않으면 원내 진출을 못하는 것이고, 시민들이 지지하면 원내 진출 정당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당원이 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없어요."정답이다. 우리나라 정당법은 당원의 자격을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선거권은 '19세 이상'부터 주어진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국회의원에 출마를 했어요. 여러분이 부모님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학생들은 이구동성 당연히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답한다. "없어요." 아이들은 깜짝 놀란다. 공직선거법은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19세 미만의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우리나라에서 19세 미만은 선거권·피선거권이 없음은 물론, 정당에 입당할 수도 없고, 선거운동을 할 수도 없다.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청소년들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딱히 명확한 기준은 없다. 민법상 성년의 기준이 만 19세라는 게 그나마 근거라 할 수 있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합헌이라 하였다. 좀 길지만 학생들에게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과 소수의견을 그대로 읽어줬다. 먼저 다수 의견이다.
"첫째, 청소년은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으며 현실적으로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존성에 의해 청소년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민주적인 시민으로서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둘째, 물질적 정신적 측면에서 보호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경험이나 적응능력 등의 부족으로 인해 중요한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선거권 연령은 나라의 역사, 전통과 문화, 국민의 의식수준, 교육적 요소, 신체적·정신적 자율성의 인정여부, 정치적·사회적 영향 등을 종합하여 결정할 문제다. 이상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현행 제도는 합헌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소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청소년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입당 또는 선거운동에 연령하한선을 법으로 정하는 나라는 그 실례를 볼 수 없다. 물론 우리와 같은 형태의 정당법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당의 구성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사례도 찾기 어렵다. 공직선거법상의 연령에 따른 선거운동제한은 단지 선거과정에서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거운동기간 외에 통상의 정치운동조차 청소년들에게 허용될 여지마저 없애버린다." 학생들은 다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소수의견도 맞는 말이라고 했다.
선거권 연령의 기준을 18세로 정하고 있는 국가가 110여 개국이 넘는다. 유럽에서 20대 의원의 등장이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은 청소년기의 정치수업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변호사나 교수 등 전문가가 '갑자기' 의원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정당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서 검증된 사람들이 의원이 된다는 것이다.
스웨덴이나 독일의 총리 상당수는 정당 청소년 조직 출신이다. 시민들의 정치참여율이 높고, 정치가 안정된 나라의 특징은 청소년기부터 정당 활동을 하고, 정치수업을 받을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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