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포사일리지이모작은 하지 않는 요즘 논에는 볏집을 말아 포장한 곤포 사이로 아이들이 하교한다
전새날
당시에는 보릿거름으로 재를 뿌리기도 했다. 재는 염기성이라 산성화 된 땅을 중화한다. 가을가뭄이 심하거나 보리논을 장만 해 놓고 다른 일 때문에 여러 날 지나서 땅이 너무 건조한 상태라면 돼지거름에 보리 씨앗을 섞어 뿌리기도 했다. 잘 완숙된 돼지거름은 습기가 많다. 여기에 씨앗을 섞어 뿌리고 흙을 덮은 뒤에 가볍게 밟아주면 가뭄도 안탈뿐더러 싹이 빨리 트고 발아율도 높아진다. 그렇지만 노동력이 워낙 많이 드는 농법이라 따라 해 보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겉보리와 쌀보리조선시대에는 월동작물이면서 화본과 작물인 보리나 밀을 콩과작물이면서 여름작물인 콩과 연 2모작 농사짓기를 권장했었다. 이런 작부는 콩과작물의 질소고정이라는 특성 상 토양의 비옥도를 보존하는 농법이라 식량작물 증산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맥전조세법'이라 하여 보리에 부과하던 세금을 콩에도 부과하기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만큼 그루갈이가 보편화 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보리는 크게 겉보리와 쌀보리로 나뉘는데 겉보리는 길쭉하고 색이 짙지만 쌀보리는 둥글고 알이 쌀처럼 하얗다. 그래서 쌀보리는 밥에 놔먹기 좋지만 겉보리보다 씹는 맛이 덜하다. 왠지 버석버석하고 억센 느낌이 있다. 겉보리는 한번 삶았다가 밥에 놔먹으면 부드럽고 구수하게 먹을 수 있다.
이름에서도 엿보이듯이 겉보리는 씨방 벽에서 분비되는 점액물질로 인해 익은 후에 껍질이 씨알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고, 쌀보리는 껍질이 씨알에서 잘 떨어지는 것이다. 70년대에 춘곡 수매를 하면 쌀보리가 훨씬 비쌌다. 껍질이 없다시피 하니까 방아를 찧으면 수량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한가마 찧으면 쌀보리는 50되 정도 나오지만 겉보리는 40되가 채 못 된다. 대신 돼지먹이가 되는 등겨가 많이 나온다.
쌀보리는 추위에 약해서 남부지방에 많이 재배하지만 작황이 좋아도 소출량은 겉보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70-80% 수준이 안 된다. 월동작물인데 추위에 약하다면 수확량이 적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껍질을 다 벗겨 놓은 보리쌀은 어느 것이 더 비쌀까? 이번에는 반대다. 겉보리쌀이 쌀보리쌀보다 조금 비싸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기도 하지만 겉보리쌀이 밥맛도 좋고 엿기름을 내거나 차를 끓이기에도 더 좋기 때문이다.
태평농법으로 손 쉬워진 보리농사
하동에 사는 이영문선생이 태평농법이라는 것을 시도하면서 보리농사가 쉬워졌다. 태평농법으로 짓는 보리농사는 콤바인으로 벼 베기를 하면서 동시에 보리씨앗을 뿌린다. 특수 제작한 콤바인이 그 역할을 하니까 벼 베기와 보리 파종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콤바인이라는 농기계가 없는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제, 보리씨앗을 맨 논에 뿌리고 볏짚으로 덮는 식이 되니 일손이 많이 준 것이다. 흙으로 묻는 것보다는 새가 쪼아 먹는 등 발아율이 떨어지지만 보통 200평 한 마지기당 20Kg 하는 평균 파종양보다 조금 더 뿌리면 된다.
태평농법 아니라 뭐가 등장해도 보리농사가 신나는 순간은 딴 데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한쪽에서는 나락을 베서 나락단을 세우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타작을 하고 또 한편에서는 보리갈이를 하나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때에 나락 가마니 빼 돌리려 비자금 마련하는 재미가 바로 그것이라는 주장이다.
타작마당에서 나락 가마니를 짊어지고 집으로 나르면서 그 집 아들을 필두로 몇 사람이 모의를 해 가지고는 친구 집이나 옆집 아래채로 나락 가마니 한두 개를 빼 돌려서 밀린 주막집 외상 술값을 갚거나 장터를 찾아다닐 수 있는 비자금을 장만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보리갈이 하는 바로 이때라는 것이다. 공소시효도 다 지난 지금 뒤늦게 옛 추억을 실토하는 노인들이 시골 마을마다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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