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 뜯긴 밴조의 귀와 봉합 수술 후 모습
치료멍멍동물병원 신사본원
다른 개를 물어 죽였을 때, '개 값'만 물어주면 된다? 개가 사람을 공격하거나 다른 개를 공격하는 사고는 자주 발생한다. 동물보호단체에도 '내 개가 다른 개에게 물려 죽었는데 억울하다. 보상 받을 방법이 없느냐'는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온다. 개 주인의 잘못으로 사람이 물린 것이 명백할 경우, 민법상 개 주인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실치상으로 형법에 관련된 처벌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물려 죽은 것이 사람이 아닌 동물일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동물도 사람의 '소유물', 즉 물건으로 보기 때문에 '개 값', 다시 말해 동물의 목숨값으로 몇만 원 안 되는 돈만 배상하는 것 외에 아무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개에게 물려 다른 개가 다쳤는데도 '뭐 개들끼리 놀다 그런 걸 갖고 그러냐'며 병원비를 못 내겠다고 되레 큰소리치는 사람도 여럿 봤다.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의 소유자는 외출 시 목줄 등 안전조치를 하게 되어 있고, 도사견·아메리칸 핏불테리어·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스태퍼드셔 불테리어·로트와일러 등 다섯 종과 그 외 잡종의 개, 그리고 '그 밖에 사람을 공격하여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큰 개'는 목줄과 함께 입마개를 착용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밴조가 당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충분한 방법일까?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핏불, 로트와일러 등 일부 견종의 사육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특정 견종에 대한 법률(Breed-specific Legislation, 이하 BSL)'이 지난 십수 년째 논란이 되고 있다. 개가 사람을 공격하거나 투견 등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특정 종 개의 소유를 금지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입마개 씌우기, 중성화 수술, 책임보험 가입, 정해진 길이의 목줄 착용, 사유지 앞에 '개조심'이라는 문구를 부착하거나 개에게 표식을 다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의 규제 법안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법이 시행되는 지역에서 사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금지된 종을 숨겨서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거나 책임감 있게 개를 기르는 견주와 동물들이 피해를 보는 등의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혼혈견의 경우 종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of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도 BSL에 대해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다. CDC는 개의 공격성은 종 외에 성별·유전적 성향·어렸을 때의 경험·사회화 훈련 정도 등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CDC의 조사에 따르면, 개에게 물리는 사고의 70% 이상이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수컷 개에게서 발생하며, 중성화되지 않은 수컷 개는 중성화된 개보다 공격성을 보일 확률이 2.6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묶어서 기르는 개는 그렇지 않은 개보다 무는 사고를 낼 확률이 2.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통계를 보면 개가 사람을 심각하게 공격한 사고의 97%가 중성화되지 않은 개에게서 발생했고, 84%의 동물은 학대받거나 방치되는 등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동물들이었다.
CDC는 특정 종에 국한해서 사육을 금지하는 것보다, 종과 상관없이 책임감 있는 사람들만 동물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면허제를 권장하고 있다. 또 중성화 의무화법이나 투견 금지법, 개를 묶어서 기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anti-tethering law) 등을 강화하는 등 종과 상관없이 모든 동물 소유자가 책임의식을 갖고 자신의 동물을 통제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하는 방향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로망'만으로 기르는 대형견, 비극적 사고의 지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