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9월 28일 낮 부산 롯데호텔에서 전격적으로 만났다. 추석을 맞아 부산을 찾은 두 대표가 총선과 관련한 오찬회동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명분을 내세워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강하게 추진하다 여의치 않자 문재인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02년 '노무현 바람'을 만들어낸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은 이런 '국민공천' 방식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박 학교장은 "당시 민주당 안에서 결정권을 가진 동교동계에 도전하는 신진그룹이 생겼는데 그들은 당원의 신망을 얻어 다수가 되려고 노력하기 보다 조직 자체를 없애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들은 정당 안의 권력자원은 적지만 미디어나 여론에서의 권력자원은 많은 명사들이었다. 그래서 동교동계가 가진 정당 안의 조직자원을 없애면 여론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구당과 (당원) 공천권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국민참여경선'이라고 이름 붙였다."박 학교장은 자신의 저서 <정당의 발견>에서도 "(국민참여경선제, 완전국민경선 등) 이러한 변화가 계속된다면 결국 당원과 대의원을 포함해 당 조직의 역할이 줄어들게 될텐데, 그럴 경우 정당의 역할은 간헐적으로 선거 시기에만 작동하는, 공직후보 선출을 관리하는 기구에 불과하게 된다"라고 꼬집었다.
"정당 조직의 역할이 줄면 당 밖의 일반시민의 영향력이 커질까? 형식 논리적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일반시민이 아니라 동원된 시민과 이들을 동원한 정치엘리트 개개인의 영향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은 정당조직이 아닌 후보 개인의 캠프와 사조직이 주도하고, 당선 뒤에도 정당조직과는 무관하게 개인 통치자 내지 정치 엘리트 개개인으로서 활동하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정당의 발견>, 24-25쪽)"완전국민경선제를 하고 시민에게 공공정책의 결정권을 돌려준다고 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실험은 살펴볼 만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당체제가 붕괴되고 포퓰리즘이 심화되고 감세에 따른 재정 붕괴가 이어지고 그 고통은 전기, 수도, 공교육 분야에서 하층의 시민들에게 집중적으로 전가되었다. 공직후보와 정책, 법안을 정당정치의 매개 없이 시민들에게 직접 결정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정당의 가장 큰 역할은 '선택을 구조화하는 것' 즉 '대안을 정의해주는 것'에 있다."(<정당의 발견>, 177쪽) 박 학교장은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등 신진그룹이 제대로 하려고 했다면 동교동계보다 더 큰 당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라며 "하지만 그들은 당내 의견구조보다 여론 의견구조에 따라 정치하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지적했다.
"정당 안에서 신망을 얻어 공천받고, 의정활동을 잘 조직하면서 정부를 운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했는데, 그것을 방기하고 '여론시장에서 더 많이 지지받을 수 있나'에만 열중했다. 그 바람에 조직(정당) 안에서 성장하기 위한 긴 노력을 피하게 됐다. 또 정당의 조직적 기반은 약화되거나 해체됐고, (시민들이 관전만 하는) 청중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가 심화됐다.""국민이 공천할 수 있다면 정당은 필요 없어"박 학교장은 "국민공천제, 당원공천제로 나누고 국민공천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개념적인 사기행위다"라며 "정당에서 공천하는 것이 국민 의사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대표할 정당을 조직해서 공공정책의 결정권자나 정부의 운영권자를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현실'이기 때문에 국민이 직접 공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국민들이 직접 공천할 수 없어서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 유권자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국민은 (최종적인) 주권자가 되고 싶지 정당이 이리저리 동원하는 소모품이 되고 싶겠나? 정당이 시민들의 의견을 조직화해서 이것을 대표하게 해야 한다. 국민이 공천할 수 있다면 정당은 필요없다."박 학교장은 "차라리 정당과 선거를 없애고 중앙선관위에 국민여론조사센터를 만들거나 기업들이 주식시장을 열듯 정치주식시장을 열어서 인기가 높거나 주가가 높은 사람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으로 뽑으면 될 것이다"라며 "그게 가능하다면 뭐하러 정당을 만들고 선거하나?"라고 꼬집었다.
"민주주의를 시민의 선호를 반영하고 대표하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그때의 민주주의는 시장체제처럼 작동해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면 복잡하게 정당정치를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시민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하는 방식, 즉 여론조사로 대표를 뽑아도 되고, 주식시장을 열어 개별 정치인에 대한 평가와 책임을 물으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경제나 여론조사의 경우 행위자의 선호는 주어진 것으로 가정되지만, 민주주의 핵심은 '시민의 선호란 정치과정을 거치며 형성'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정당의 발견>, 174쪽)박 학교장은 "특히 당원을 기득권자로 봄으로써 당원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이 한국정치의 담론이 돼 버렸다"라며 "이렇게 당원도 모멸받는 구조 속에서 계파들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한국정치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박 학교장은 "민주화를 했으면 권위주의 정당체제를 민주적 정당정치로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을 힘들게 치르기보다는 여론시장 정치로 전환시키면서 조직적, 대중적, 사회적 기반을 스스로 허물었다"라며 "여론시장에서 '한방에' 무엇을 하려고 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정치의 전망은 더 나빠졌다"라고 진단했다.
박 학교장은 "정당 안에서 신뢰를 얻고 실력을 인정받아 공직후보로 나가 시민들로부터 최종 평가받는 것이 민주주의다"라며 "정당 안에서 상향적으로 정치가를 길러내는 과정을 만들지 못한 채 매번 제도를 바꾸어 계파나 도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을 반복하면 안된다"라고 주문했다.
"전략공천은 하향식이고, 국민공천제는 상향식이라고 하는 것도 말장난이다. 정당 안에서 실력과 신망을 가진 사람이 성장해서 공천받는 것이야말로 상향식이다. 국민이 공천해야 상향식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정당이 왜 있어야 하나? 지금 논의되고 있는 상향식도 아니고 계파나 도당들의 권력투쟁일 뿐이다.""초선의 패기로 정치가 다 해결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