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교 관악구청 정책실장
정창교
- 2002년 대선 때도 조직 동원, 정책대결 실종, 경쟁 과열 등의 문제가 불거지긴 했다. 국민이 공천에 참여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완벽한 제도는 없다. 결정한 제도를 가지고 효과를 극대화하며 발전시키면 된다. 일각에서는 당원의 규모와 권리를 늘리는 유럽식으로 가야 한다고 하지만, 국민의 정치적 관심 자체가 저조한데 의미 있는 당원 가입을 이끌어낼 수 있나 싶다. 일단 일반 국민들이 선거 때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정당 가입과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2002년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했던 200만 명의 명단은 이후에 어떻게 됐나? 허공으로 전부 사라졌다.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때 모집한 시민명부도 분실하지 않았나. 제 정신인 정당이라면 그들을 어떻게든 계속 관리하며 다음 선거 때도 공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을 것이다. 국민들의 참여가 정당 활동으로 이어지면 200만 명이 300만~400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지금의 제1야당은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 오픈프라이머리도 찬성하는가."완전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이든 제한적 국민참여경선이든 상관없다. 차이가 크지 않다. 아까도 말했지만 어차피 완벽한 제도란 없다. 어떤 방식이든 신속하게 정해서 국민의 참여를 최대한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오히려 정치권이 국민공천 방식을 두고 논란을 끌면서 정치 불신만 키울까봐 두렵다.
여야가 빠른 시일 내에 제도를 확정 짓고 유권자에게 총선 관련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후보들을 꼼꼼히 비교해본 다음 투표장에 나올 수 있다. 여야가 갈등하는 모습을 지나치게 오래 보여주면 국민들은 '정치인은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한다'는 생각에 선거를 더욱 외면하고 불참할 것이다."
-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는 오픈프라이머리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신인의 진입장벽을 높인다는 이유다."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참여를 높일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한들 경선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질까? 관심이 저조하면 어떤 경선 방식이든 조직 동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흥행 실패로 민심이 왜곡돼 결과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치 신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려면 제도보다는 시간을 줘야 한다. 충분한 기간 동안 선거인단에게 자신의 이름과 정책, 비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제2의 노무현'이 나올 수 있다. 이번 혁신위가 놓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 신인 가산점이나 '물갈이' 등의 기술적 측면에 집중한 나머지, 국민에게 참여 기회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과정을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다."
- 국민의 참여를 높이는 과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최대한 제도와 룰을 빨리 확정 지은 다음, 경선에 참여하는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충분히 보장하는 식이다. 2002년 당시 주요 지역을 순회하면서 유권자들에게 경선 후보별 정보를 준 것처럼, 이번 총선 때도 후보 공천을 위한 경선을 치르기 전에 당 차원에서 토론회를 수시로 개최해야 한다. 한 지역구의 동별로 사람들을 모아 토론회를 열어서 어떤 후보가 무슨 공약을 들고 나오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후보와 관련해 입소문이 나면 주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비교 평가하며 경선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혁신위 차원에서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은 경선 전 당내 토론회 참여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 총선 후보 경선 때 토론회를 열긴 했지만 현역 의원인 후보들이 참가하지 않으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들 입장에서는 굳이 토론회에 나서지 않아도 인지도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로는 지역 주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 당 차원에서는 '경선 후보 간 토론회에 참여 안할 시 불이익을 준다'는 식으로 의무적인 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다.
2002년 대선 때 승리한 이유는 결국 제도보다는 과정 덕분이었다. 더 이상 승리의 결과에만 취하지 말고 그때의 과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안심번호? 당원만 전화 받으면 무슨 소용인가"- 최근 정치권 이슈로 떠오른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어떻게 평가하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기술을 발전시켜도 유권자의 참여를 이끄는 과정에 소홀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안심번호를 도입해 선거인단 1000명의 표본을 추출한다고 치자. 당원들만 전화 받아서 응답률이 2~3%에 머물거나 후보가 누군지 몰라 대충 아는 이름을 찍는 경향이 나타나면 국민 공천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나?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려면 국민 참여를 최대로 이끌어내기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제도를 완성하는 건 결국 참여에 달렸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위해 마련한 선거인단을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더 이상 일반 국민 유권자를 경선 때만 쓰고 버려선 안 된다. 매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선거를 준비하지 말자는 뜻이다. 정치적 열망을 품고 공천 과정에 참여한 국민들을 당원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정치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사실 국민공천 방식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현행 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여야 합의로 공직선거법을 바꾸는 게 쉽지 않으니 정당 차원에서라도 국민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국민공천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가 어떤 식으로 개선돼야 할까."예비후보들의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보장해야 한다. 2004년에 예비후보자 등록제도가 도입돼 당내 경선 등에 참여하는 후보들의 선거운동이 제한적이나마 이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 현행 제도상 공식 선거운동 기간 16일과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을 제외하고는 후보를 알리는 게 원천 금지돼 있다. 출마를 결심한 후보자와 유권자들이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할 기회가 그만큼 제한되는 것이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들은 유권자를 만날 기간이 짧다 보니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선거기간에 상관없이 항시적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할 수 있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뉴욕 주 상원의원 선거 18개월 전에 공식 출마를 선언하고 지역을 돌면서 주민들을 자유롭게 만났다. 유권자와 직접 만나는 미팅도 수천 번이나 열었다고 한다. 후보자가 떳떳하게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면서 유권자와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거 문화 덕분인지 몰라도, 미국에서는 당의 후보를 공천하는 예비 경선이 열릴 때 무려 수천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하기도 한다.
미국처럼 상시적인 선거운동 보장이 어려우면,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의견을 모으면서 예비후보 등록기간을 현행 선거일 전 4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기로 했다.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제도가 개선되면 국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신인의 기회도 공정하게 보장할 수 있다고 본다. 여야가 더 이상 기술 문제에 시간을 끌지 말고, 핵심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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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공천, 이렇게 해야 '제2의 노무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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