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줍기 삼매경아내는 이미 은행줍기 삼매경에 빠진 듯하다. 나는 은행 줍다가 말고, 이렇게 사진이나 찍고 있는데, 아내는 전혀 흔들림이 없이 은행을 줍고 있다.
송상호
한참 신나게 은행을 줍고 있는 그때, 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탁탁탁탁". 그랬다. 석남사 스님의 아침 예불 소리다. 목탁소리가 주변의 고요함을 깨운다.
"여보! 저 소리가 이러는 거 같지 않아. '무상 무념 무욕.'"그 거룩한 목탁소리에 토를 단 건 나였다. "이만큼이면 많이 주웠으니, 이제 그만 줍고 집에 가자"는 나의 투정을 담았다. "스님이 우리에게 무욕을 말씀해주시니, 은행에 대한 욕심을 그만 부리라는 계시"라며 내가 웃었다. 아내가 이 투정을 한방에 잠재우는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를 했다.
"여보! 난 못 들었어"헐! 진짜 못 들었을까. 아니면 안 들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못들은 척 한 걸까. 평소 아내의 스타일로 봐선 진짜로 못들은 듯하다. '못 들었다'는 말을 하는 아내의 얼굴이 '무상, 무념, 무욕'이었다.
그랬다. 나는 은행을 주우면서 잡생각을 하다 보니, 스님의 목탁소리가 들렸다. 반면, 아내는 이미 '은행 줍기 삼매경'에 들어간 거다. 그 일에 몰두하던 아내에겐 주변소리가 잘 들어오지 않은 거다. 평소엔 청력이 좋아 조그만 소리에도 반응을 잘하는 아내다. 평소엔 청력이 약해 주변 소리에는 둔감한 내게 오히려 목탁소리가 크게 들려왔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