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지난 2013년 8월 2차 해고된 정승기씨 . 사진은 지난 8일 모습이다.
심규상
"이후 남편은 사원들의 죽음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특히 20대 건장한 청년인 고 조OO 사원과 고 최OO 사원의 연이은 사망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더 이상 죽음의 행렬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유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유족대책위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당시 회사는 집에서 돌연사한 유족에게도 회사 밖에서 죽으면 회사 책임이 아니라고 단언했듯이 사원들은 회사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거나 사망을 하더라도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남편이 회사로부터 정직 3개월을 당해 태어나 처음으로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때 회사 측 팀장이 나와 1인 시위를 하면 남편이 해고당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1차 해고 때는 서울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자 경찰을 부르고 법원에 가처분소송까지 냈습니다. 최소한의 항의표시인 1인 시위마저도 막으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안간힘을 썼습니다."정직 당하자 노조에서도 '제명처분'민씨는 노동조합이 남편에게 했던 일도 담담히 썼다.
"노동조합은 남편을 지켜주기보다는 배척대상으로 생각하여 두 차례나 조합에서 제명했습니다." 그는 가장 충격적인 일로 사내에서 동료가 남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사건을 꼽았다.
"회사가 살해위협을 가한 사원과 남편을 바로 격리조치 시키지 않고 같이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 후 재판이 끝난 뒤에서야 다른 곳으로 전보시킨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남편의 멱을 따버리겠다고 협박한 관리자를 사실상 승진시킨 일, 남편이 전환배치를 당해서 대전공장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던 날 관리자들에게 온갖 폭언을 들은 일 등은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들이었습니다." 남편 정씨는 유가족대책위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유족들이 피켓을 만들고, 선전물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고, 서울 본사 등 유족들과 함께 시위현장에 늘 참여했다.
"사측은 유족시위를 도왔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가처분 소송을 했습니다. 유족들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유족들은 산재인정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회사는 500여 억 원을 들여 작업환경개선을 했다지만 남편이 해고된 뒤에도 사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남편 생일에 책을 선물했던 김OO 팀장마저 집에서 돌연사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끝내 정씨는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지난 2010년 3월 해고됐다. 그는 "회사의 억압적 조직문화와 열악한 작업환경을 고발한 데 대한 보복 징계"라고 항의했다.
정씨는 대법원의 판결로 지난 2013년 7월 복직했지만 2개월 만에 다시 해고됐다. 복직 이후 사원을 선동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시하거나 배포해 회사 경영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을 포함, 해고 이유는 7가지였다(관련 기사 :
"단식 22일째, 복직될 때까지 계속 농성").
"남편이 바란 것은 다치거나 죽지 않는 건강한 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