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근로기준법은 해고를 비교적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지난 9월 13일 노사정 합의에 따라 정부가 추진하는 일반해고 완화는 기업이 언제나 마음대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유성호
지난해 1월 대신증권에는 53년 만에 노조가 생겼다. 전략적 성과 관리 프로그램이 촉매제가 됐다.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는 이 프로그램이 영업점 폐쇄 계획에 따른 상시적 퇴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지난 2011년 대신증권이 노조파괴로 악명 높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에 의뢰한 용역보고서를 들었다. 거기엔 "외부적으로는 저성과자의 역량 프로그램으로 설계하되 내부적으로는 어려운 과제를 부여해 잔류의지를 없앤다"라고 명시됐다.
'명함 받아오기' '우편물 분류하기' 등 모멸감을 안겨 퇴직을 유도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논란이 됐다.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지난 7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이 본격 시행된 2012년 5월부터 이듬해 말까지 교육 대상자 139명 중 37명(희망퇴직14명·자진퇴직23)이 떠났다.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주는 교육을 받고도 4명 중 1명이 사표를 썼다는 얘기다. 결국 회사는 비판 여론을 받아들여 현재는 일부 프로그램을 완화해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상시적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의혹에는 강하게 부인했다. 23일 대신증권 홍보실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해당 프로그램은 증권회사에서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이며 퇴출이 목표라는 건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밝혔다. 또한 교육 대상자 4명 중 1명이 사표를 쓴 건 "본인들의 의사였을 뿐 강요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창조컨설팅에 의뢰한 용역보고서는 "여러 참고 자료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성과 향상 프로그램이 퇴직을 유도한다는 논란은 이 회사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논란이 된 KT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114 안내원 출신 여성 직원에게 인터넷 전화 개통 업무를 부여하고 울릉도 등 벽지로 보냈다. 그가 전신주와 지붕에 오르는 업무를 해내지 못하자 회사는 정년을 1년 앞두고 '업무지시 불이행과 근무태만'으로 징계해고 했다. 현대중공업에서도 희망퇴직 거부자들에게 '10년 후 내 모습 쓰기'와 같은 역량 강화와 상관없는 직무 재배치 교육을 실시해 '퇴출 예고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해고를 비교적 엄격하게 제한한다. 횡령 등 명백한 징계 사유가 있는 '징계해고'와 긴급한 경영상의 필요로 인한 '정리해고'만 허용한다. 긴급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도 회사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징계 해고자에게도 30일 전에 해고 예고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0일 분의 통상임금을 주도록 했다. 법이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한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사용자와 달리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는 임금이 생존과 직결되기에 그렇다.
해고 요건이 까다롭기에 저성과자 역량 강화 프로그램은 고용유연화를 원하는 기업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월 13일 노사정 합의에 따라 정부가 추진하는 일반 해고 완화는 기업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 준 것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일반 해고가 합법화 된다면 그동안 퇴직을 권유하며 합의금 명목으로 쥐어주던 명예퇴직금까지 아낄 수 있다. "돈 드는 해고를 돈 안 드는 해고로 바꿨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로 청년 고용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3년째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받고 있는 김광한씨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울분이 치솟는다. 그는 "25년 동안 쌓아온 인맥과 영업 노하우는 청년을 여러 명 고용한다고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정부가 장년과 청년 세대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회사를 향한 원망도 털어놨다.
"과거에 일을 했으니 지금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기업은 사회적 책무가 있잖아요. 청춘을 다 쏟아 붓고 일했던 직원들이 지금 당장 돈을 못 벌어 온다고, 더 지나면 쓸모가 없어진다고 미리 정리하는 게 참… 가혹하죠."그는 후회한다. 녹차 티백을 우려먹은 종이컵을 하루 종일 재활용하고, A4용지를 아끼기 위해 꼬박꼬박 이면지를 챙기며 회사를 내 집처럼 여겼던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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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안하자 '전단 돌려라' "회사에 불을 지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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