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양면성한쪽에서는 산 자들이 몸을 씻고, 그 너머에선 사자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윤인철
화장터에서 넋 놓고 상념에 젖어 있을 때, 화장터 가이드로 보이는 한 인도인이 슬며시 다가왔다. 그는 화장터 방문을 환영한다며 저 뒤에 보이는 건물 2층에 가면 '신성한 불(Holy fire)'이 있고, 화장터 전체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다고 했다. 장호의 만류에도 그를 따라 건물로 올라갔다. 콘크리트 건물 2층에는 그의 말대로 '신성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따라 5000년 동안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는 신성한 불을 향해 합장을 하고 절을 올렸다. 그는 신성한 불에서 나온 재를 손에 묻히더니 우리의 이마에 찍어 주었다. 우리는 엄숙한 종교 행사를 치르는 듯 마음과 자세를 경건히 하고 이 성스러운 의식에 참여했다.
신성한 불의 재를 이마에 묻히고 우리는 그와 함께 화장되는 시신 바로 옆으로 이동했다. 그는 우리에게 힌두교와 인도의 화장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화장 비용은 장작값과 불씨값을 합한 것인데 부자와 가난한 집안에 따라 나무의 차이가 크며, 여기 보이는 장작 더미가 높은 것은 부자의 화장이라고 했다.
시신이 모두 타는 데는 보통 3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또한 화장터 위에 있는 저 건물들은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호스피스 건물이라고 했다. 물론 그가 설명하는 모든 것을 명료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낮은 톤으로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서 갠지스 강 화장터에 깃든 힌두의 무게와 생사의 의미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의 엄숙한 나레이션은 '기부'로 마무리되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알면서도 또 당했네' 그는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며, 그중에는 한국인과 일본인도 있다고 했다.
"(묵직한 음성으로) 저 호스피스 건물 안에는 두 명의 한국인과, 한 명의 일본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에 쓸 나무를 구하지 못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지요. 당신들이 기부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그들을 위한 기부를 해 준다면 크나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우리는 '도네이션(donation, 기부)'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이 가이드의 모든 시나리오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단호히 그의 제안을 뿌리치고 뒤돌아섰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종교 의식을 집전하던 성스러운 사제의 모습을 간데없고 시정 잡배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경찰서로 가자고 협박하기도 하고, 인도말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뭐라 뭐라 떠들기 시작했다. 난 주위 사람들이 듣도록 "난 당신에게 설명을 요구한 적이 없다. 당신이 원해서 해 준 것인데, 내가 왜 돈을 지불해야 하는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괘씸한 녀석, 우리는 이미 인도 여행을 통해 이런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터득했다고.'우리가 더 강한 톤으로 거절하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나에게 친절히 다가오는 대부분의 인도인은 '호객', '사기', '거짓말', '공갈·협박'의 사람들이었다. 인도인의 친절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이 당해야 하는 힌두의 쳇바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일본인 부인과 인도인 남편이 운영하는 메구 식당에서 새우 덮밥을 먹었다. 아, 오랜만에 맛깔 나는 음식을 먹으니 신발을 잃어버린 찜찜함조차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많은 가이드북에서는 바라나시의 여행 일정을 추천해 주지 않았다. 바라나시는 계획도, 세부 여행 일정도 필요하지 않는 곳이었다. 갠지스 강가의 가트를 따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벗 삼아 거닐면 그것이 바라나시 여행의 전부였다.
다샤스와메드 가트(메인 가트)에 가니 매일 저녁 6시 힌두교 의식인 '푸자'가 열린다고 했다. 우리는 가트에 나란히 앉아 멍하니 갠지스 강을 응시했다. 갠지스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고 있는 현지인의 종교적 경건함과 해석 불가한 신비한 힘을 느끼며, 정말 갠지스에서 멍 때리다 미칠지도 모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들의 표정 속에는 신성한 곳을 찾은 영광과 마음의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