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 아래 한양도성도성은 성 안팎을 나눈다. 성안은 종로요, 밖은 성북이다
김정봉
한양도성은 방어를 위한 것이지만 한성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권의 권위를 대내외에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죽어서는 성안에 머물지 못하였으므로 도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하였다. 성안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왕, 평민이 따로 없었다. 왕도 죽으면 교(郊)교에 묻혀야 했다.
성문(城門)에서 외사산 기슭에 이르는 곳을 교라 하는데 남대문 밖을 남교, 동대문 밖을 동교, 서대문 밖을 서교, 창의문 밖을 북교라 했다. 요새 쓰이는 교외(郊外)라는 말도 교 바깥이라는 의미로 교에서 나온 것이다.
송동앵도 성북도화(宋洞櫻桃 城北桃花)동촌은 한양도성 아랫마을이고 도성 너머와 동대문 밖은 성북(城北)과 동교(東郊)다. 주산으로 말하면 낙산과 응봉 아랫마을이 동촌이다. 응봉은 내사산에 들어가지 않지만 창덕궁과 종묘, 창경궁, 성균관의 주산역할을 한다. 동촌 동쪽 경계는 한양도성 동쪽으로 성균관대학교 위, 와룡공원에서 시작하여 혜화문을 거쳐 낙산, 흥인지문(동대문)까지 이어진다.
동촌 경계선 첫머리는 와룡공원, 응봉줄기에 있는 공원이다. 와룡공원 아랫마을은 송동(宋洞). 송시열 집이 있어 이렇게 불렸다. 예전부터 앵두나무로 유명하여 단오 때 앵두놀이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와룡공원 성너머는 성북동. 성북은 복숭아꽃이 유명하여 시인묵객의 입에 오르내렸다. 송동앵도(宋洞櫻桃)요, 성북도화(城北桃花)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