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박곡마을에 있는 양산원의 집 터. 명량대첩을 앞둔 이순신이 조선수군 재건에 나서 군량미를 확보했던 곳 가운데 하나다.
이돈삼
고내마을과 박곡마을에서 군량미를 확보한 이순신은 또 길을 나섰다(관련 기사 :
'군량미를 어쩐다' 고민하던 이순신이 향한 곳). 다음 목적지는 보성이었다. 추석을 하루 앞둔 1597년 8월 14일(양력 9월 19일)이었다. 전시상황인지라 명절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날씨도 궂었다. 보름달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박곡에서 보성으로 가려면 쇠실마을을 거쳐 기러기재(雁峙)를 넘어야 한다. 지금의 2번국도 변의 기러기 휴게소를 지나는 큰 고개다. 쇠실마을 입구에 '백범 김구 선생 은거지' 안내판이 서 있다. 행정구역상 보성군 득량면 심송리에 속한다. 안동 김씨 집성촌이다.
쇠실마을에는 우리 민족의 큰 스승으로 통하는 백범이 젊은 날 40여 일 동안 머물렀던 집이 있다. 백범이 이 마을을 찾은 건 1898년 5월이었다. 청년 김구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하수인인 일본인 쓰치다를 맨손으로 죽인 사건(치하포 의거)으로 체포돼 인천감영에 수감됐다가 탈옥해서다.
백범이 탈옥 후 숨어 들었던 마을선생은 '감옥에서 죽는 것은 왜놈들에게만 좋은 일'이라며 탈옥을 결행했다. 백범은 그해 3월 탈옥 후 삼남지방을 다니다가 산 깊은 이 마을에 숨어들었다. 마을에 있는 김광언의 집이었다. 선생은 이 집에 머물면서 마을사람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가르쳤다. 독립의식도 드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