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윗세오름 오르는 길
황보름
늦지 않게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사장님 어머니는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놓고 계셨다. 인원수에 맞춰 김밥과 과일, 그리고 초콜릿까지. 각자의 가방에 하나씩 넣어주시며 혹시 일행과 떨어졌는데 배가 고프면 먹으라고 하신다.
한 시간쯤 후에 호탕한 웃음이 매력적인 일행분이 도착했다. 말을 끝맺을 때마다 '아하하하' 웃으시는 분이었다. 그분이 그렇게 웃으면 사람들은 절로 따라 웃게 됐다. 나도 처음 보는 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계속 킥킥거렸다. 그렇게 서로 웃음을 주고받고 있는 사이 일행은 총 6명으로 늘어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던 10살짜리 초등학생과 아이 엄마도 함께 가기로 했단다. 자, 이제 한라산으로 출발이다.
한라산 국립공원 사이트를 보면 한라산에는 7개의 탐방로가 있다. 그중 우리가 오를 영실코스는 영실휴게소에서 시작해 남벽분기점까지 가는 코스이다. 우리는 끝까진 가지 않고 휴게소에서 3.7km 거리에 있는 윗세오름까지만 가기로 했다.
한 시간을 달려 영실휴게소에 도착했다. 산에 오르기 전 각자 마지막으로 등산 준비를 했다. 나는 가방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사장님 어머니가 챙겨주신 먹을거리와 물을 확인하는 게 다였다. 사장님 어머니와 일행분은 완벽한 등산복 차림이었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등산용품이었다. 멋진 지팡이까지!
반면 나는 영 형편없는 복장이었던 것 같다. 사장님 어머니는 내가 입은 반바지를 보더니 왜 옷을 이렇게 입고 왔느냐며 나무라신다. 위로 올라가면 분명 추울 거라고. 산을 오를 땐 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한다고.
그러게, 긴 바지라도 입고 올 걸 왜 반바지를 입고 온 걸까. 그런데 막상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반바지를 입고 오길 잘한 것 같기도 했다. 겨우 십여 분 걸었을 뿐인데 땀이 삐질 나기 시작한다. 옆에서 걷던 장기수도 (어머니 말을 듣고) 괜히 긴 바지를 입고 왔다며 연신 덥다 투덜거린다. 비교적 완만한 산길이 얼마간 이어졌다. 그러다 한순간 진짜 산행이 시작됐다.
넘어지지 않게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바위나 나무뿌리 등에 손을 짚어가며 산을 오르는데, 문득 내가 왜 한라산을 오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원래 등산을 싫어하는 데 말이다.
원래도 등산을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미련을 깨끗이 버리게 된 건 5년쯤 전에 관악산을 오르고 나서였다. 그때 발을 된통 삐었다. 능숙하게 산을 타는 일행들의 속도에 맞추려고 무리를 하다 그만 발을 헛디딘 탓이었다. 사람들이야 앞서가든 말든 속도에 맞게 천천히 오르면 될 일이었는데 괜한 일을 만든 거였다.
털썩 주저앉은 나를 사람들이 일으켜 세웠다. 결국 일행 중 몇 명은 제대로 산을 타지도 못하고 나 때문에 중간에 내려와야 했다. 이 일 이후로는 다시는 산을 타지 않았다. 그리곤 간혹 사람들이 산에 오르자 하면 '등산이 싫다'며 끄떡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