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영
[취재] 선대식, [시각화] 이종호, [디자인] 봉주영
1983년 10월 27일은 고교평준화가 고교서열화 체제로 옮겨가는 계기를 만든 상징적인 날이다. 당시 신문에는 단신 기사로 그 내용이 실렸다. 이날 있었던 일이 우리나라 교육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서울시교육위는 27일 외국어회화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원외국어학교를 인가했다.' - <경향신문> 1983년 10월 27일치1970년대 후반 영재 교육과 외국어조기교육을 위해 과학고와 외국어고를 설립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1983년 경기과학고가 과학고로서 처음 문을 열었다. 첫 외국어고인 대원외국어학교(현 대원외고)는 1983년 인가를 받고 1984년 개교했다.
대원외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이전까지 체육·예술·국악·과학 등 특수고(현 특수목적고)가 공립이었던 데에 반해, 대원외고는 사립학교였다. 또한 '대원외국어학교'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대원외고는 정규 학교가 아니었다. 외고는 준교과과정을 운영하는 '각종학교'로 분류됐다. 과학고 같은 정규 학교와는 달리 자유로운 교과과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신입생도 고입시험과 별개로, 영어 점수로 뽑았다.
개교 7년 뒤, 대원외고의 이름은 전국에 알려졌다. 1992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울대 입학생을 낸 학교가 된 것이다. 1991년에도 서울예술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서울대 입학생을 냈다. 1974년 서울·부산에서 시작된 고교평준화로 전통의 명문고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원외고는 '전국 최고의 입시 명문'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다른 외고 역시 눈에 띄는 입시 성적을 자랑했다.
당시 언론은 대원외고를 비롯한 외고가 입시 위주의 편법적 교과과정을 운영한다며 크게 비판했다. 외고가 입시명문으로 떠오르면서 고교평준화는 와해되기 시작했고, 중학생들이 고입 시험에 매달렸다. <경향신문>은 1991년 12월 22일치 기사에서 "입시학원마다 과학고·외국어고 대비 특별강좌를 개설, 중학생 과외를 부추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사교육 경쟁은 결국 누가 더 사교육비를 많이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갈린다. 그런 점에서 사교육 경쟁은 고소득층에 유리하다. 명문대 진학의 지름길이 된 외고에는 고소득층의 자녀가 정말 많을까. <오마이뉴스>는 단독으로 2015년 서울 외고 6곳과 국제고 1곳의 전체 신입생 출신 지역을 입수해 분석했다.
외고에는 누가 갈까분석 결과, 대체로 외고는 통학 거리 탓에 해당 외고가 있는 지역과 그 주변 지역 출신의 신입생이 많았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명덕외고를 살펴보면, 강서·양천구의 학생 비율이 53.4%로 절반을 웃돌았다. 성북구에 있는 대일외고도, 성북·강북·노원·도봉구 학생 비율이 55%에 달했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영외고의 경우, 강동·강남·서초·송파구 학생 비율은 82.2%에 달했다.
강남 3구와 양천·노원구 등 이른바 사교육 과열 지구의 학생 수 대비 외고·국제고 진학 비율은 다른 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두드러진 모습은 아니었다. 또한 서울 서남부에 있는 자치구의 외고·국제고 진학 비율이 낮지만, 해당 지역에 외고·국제고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면, 사교육 경쟁에서 유리한 고소득층의 자녀가 외고에 많이 간다는 추론은 잘못된 것일까.
'외고 중의 외고'이자 전국 최고의 입시 명문인 대원외고를 보면, 고소득층의 자녀가 외고에 많이 간다는 추론은 설득력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