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한국사회에 정의는 살아있는가

하나고 사태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개탄하며

등록 2015.09.16 09:36수정 2015.09.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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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슬픔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박근혜 정부에서 '시리아 난민 적극 수용'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시리아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라는 정부 발표를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마음 설레는 일일까요? 한국사회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징표 아닐까요?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고 입시 성적 조작을 폭로하고 양심선언을 한 교사가 거꾸로 불이익을 받고 모욕을 당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 

선한 가치를 지향하고 사람을 만들어 내는 학교에서 불의가 횡행할 때 교사는 마땅히 저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육은 정의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행위이고 교사는 그 중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시 성적을 조작하고 비리를 저지른 재단은 참회하기보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교사를 담임에서 잘랐습니다. 원시적인 보복성 징계이자 사학재단의 고질적인 전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공익 제보자 전경원 선생님에게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를 떠나라'고 소리치고 '넌 선생도 아니고 개XX'라며 모욕적인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전경원 선생님이 담임으로 있는 2학년 학부모들 상당수가 담임교체를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해당 반 학부모 모두가 참여했다고 학교 측은 발표했습니다. 유아무개 교사는 '폭로를 통해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며 비리 폭로를 즉각 중단하라'며 단식을 하였습니다. 학교 측 교사 7~8명은 인트라넷에서 학교를 옹호하며 전경원 교사에게 인신 공격성 비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더구나 하나고 졸업생 203명은 성명서를 발표하여 전경원 교사의 행동이 잘못됐다며 그런 행동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나아가 일부 학부모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교무실에서 '전경원 교사는 학교를 떠나라'며 피켓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앞서 학부모 300여 명은 집회를 열고 양심선언을 한 교사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사퇴 촉구 결의문에는 전경원 교사의 폭로로 학교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외부로 끌고 가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대입을 코앞에 둔 불안한 고3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성토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너무 아연하여 머리가 멍한 상태가 됐습니다. 아무리 한국사회가 정의가 실종됐다고 해도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되묻고 싶었습니다. 전경원 교사는 학교 내부적으로 비리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재단은 해결하려는 의지는커녕 비리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정작 불안해하는 것은 비리를 폭로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모교인 하나고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되지 못하는 것에 불안해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정의감이 충만한 순수한 청소년기에 받을 마음의 상처가 큰 탓이고 충격 또한 깊게 각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시를 코앞에 둔 고3 아이들의 정의감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비리를 옹호하고 덮어버리는 파렴치한 행위, 거꾸로 양심에 따라 정의의 길을 걷고자 노력한 교사를 쫓아내야 한다며 학교를 시끄럽게 하는 몰염치한 자들을 응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것이 하나고 아이들에게 '우리학교는 정의로운 학교야'라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진정한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고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것은 비리를 당연한 일상으로 치부하는 재단의 뻔뻔함과 그런 불의를 용인하며 근시안적인 이기심으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학부모들의 어른답지 못한 태도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기심으로 똘똘 몽친 공부하는 기계 혹은 바보가 아닙니다. 세상을 보는 정의로운 안목을 간직한 미래의 동량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정의가 실종된 한국사회에 어느 정도 물들어 눈 앞의 이익을 좇고 적당주의로 살아왔을지 몰라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순수한 정의감으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촉구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하나고 학생들을 위하는 것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아이들의 정의감에 상처를 주지 않고 조속히 이 사태를 마무리하여 하나고가 진정으로 명문고교로 거듭날 수 있는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과연 한국사회에 정의는 살아있는 걸까요?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과 뻔뻔함에 우리 국민들은 절망했습니다. 요즘 들어선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정권 차원에서 강요하며 교육계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 관련 서울대 교수들이 항의 성명으로 집단 반발하고 중등교사 80% 가까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엔 교과서 연구진들조차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독재국가 북한처럼 왜 국정화에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박근혜 정부는 종북을 비난하면서도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의 길을 걷는지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덧칠된 국정교과서로 세뇌된 북한 아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획일화된 행동, 판에 박힌 발표를 보노라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깊은 회의감에 빠져듭니다. 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 인민들이 보여준 슬픔과 혼절하는 태도는 연출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시안 게임 당시 남쪽에 응원하러 온 북한 미녀대학생들이 비에 젖고 있는 김정일 사진을 보면서 갑자기 가던 버스에서 내려 '우리 장군님, 비를 맞는다'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결코 연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백년을 내다보며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가치와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 그리고 사회적 관심을 보이는 어른으로 키워내는 중차대한 국가·사회적 과정입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후진국으로 퇴행하는 조치일 뿐입니다. 당장 국정화 시도를 중단하고 현행 검인정 제도를 선진국처럼 자유발행제도로 더욱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박근혜 정부 남은 절반의 임기 동안 부박한 한국사회에 정의를 뿌리내리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내려 성공한 박근혜 정부, 멋진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하나고 사태 #한국사 국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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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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