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절의 국정교과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보도한 당시 언론 기사(동아일보). 박근혜 정부의 현 국사편찬위원장인 김정배 당시 교수(네모 안)도 다양성 훼손을 이유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있다. 찬성측 논리는 '교과서 제작비' 문제로 나와 있다.
인터넷캡쳐(편집)
역사를 전공하는 대부분 학자와 교수들, 역사 담당을 비롯한 현장 교사들, 심지어는 보수적인 언론사들마저 국정교과서 도입을 반대하거나 우려하고 있다. 이를 밀어붙이려는 새누리당의 교육문화위원회 위원들도 상당수가 반대하고 있으며, 심지어 보수교육감 중에도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국정교과서 도입의 최일선에 서 있는 주무장관 황우여도 국정교과서에 반대한 바 있다. 김재춘 청와대 교육비서관도 이전에는 민주화의 진전으로 국정교과서가 폐지되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국정교과서 재도입 시도가 얼마나 코미디인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국사 교과서 편찬 기준을 만들기 위해 모인 교수들이 국정교과서 도입에 반대하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현 위원장인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1973년 유신 시절 국사 국정교과서 전환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것 역시 코미디이긴 마찬가지다.
현 정권은 '쇼'를 하고 있고, 국정교과서 개편에 찬성하는 처지를 밝힌 이들 대부분이 말 바꾸기를 하는 상황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의리도, 학자적 양심도 없어 보이는 행동이다.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0일, 국정교과서 도입이 청와대의 지시 때문에 추진되기 시작했다며 교육부의 공문을 공개했다. 청와대의 강력한 지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삶의 목표이자 정치를 하는 목표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이건 아니다.
대통령은 분명히 이전 유신 시절의 국정교과서처럼 아버지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10월 유신 쿠데타를 한국적 민주주의를 위한 결단이라고 후세에 알리고 싶을지 모른다. 그것이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방법이 국정교과서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정교과서 회귀 선언은 독재 회귀 선언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어렵게, 조금씩 이루어온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학자, 교수, 교사 심지어 보수교육감과 보수언론까지 반대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시행 국가가 소수 있지만 국정제를 폐지하였다가 다시 도입한 나라는 없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 국정화 회귀를 단행할 것인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개인적 목적 달성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국정화 회귀는 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교육의 후퇴이자 역사의 퇴보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개인적 목적에 이용하니 대통령 자격까지 운운 될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으면, 대통령이 아니라 '박정희 명예회복 추진위원회'를 꾸려서 활동하면 된다.
국정교과서 부활이 아니라 교육계 일제 잔재 청산할 때국정교과서는 나치나 일제, 군사독재시대에나 어울리는 제도이다. 한마디로 일제의 잔재, 군사독재의 유물이다. 현대교육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빼고 논할 수 없다. 이런 현대교육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제도가 국정교과서이다.
지금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은 일제와 군부독재의 잔재인 국정교과서를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교육계에서 그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다.
먼저, 사관학교나 유치원과 같은 학교 명칭부터 재고해야 한다. '유치원(幼稚園)'이라는 명칭과 사관학교(士官學校)라는 명칭이 일제의 잔재로 알려졌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일제의 잔재(황국신민학교의 약자)라는 비판에 초등학교로 바뀐 것을 모두 기억한다. 유치원과 사관학교라는 명칭을 더는 고집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유치원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부산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일본식 교육기관에, 독일식 표기를 빌려 붙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회에 일본식 표현인 유치원을 유아 학교로 바꾸자는 법안이 몇 차례 제출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군사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라는 명칭도 비슷해 보인다.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이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만주에 세웠던 '신흥무관학교', 중국 쑨원이 근대식 장교 양성을 위하여 세웠던 '황포군관학교'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사관학교라는 명칭은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1895년 신식 군대가 편성되면서 이들을 훈련하고 지휘할 초급 무관을 양성 기관의 이름도 군관학교였다.
사관학교나 유치원이라는 명칭이 정말로 일제식 표현이고, 일제의 잔재라면 더는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또한, 교실의 높은 교단, 운동장 조회대, 단속 위주 교문지도, 운동장 애국조회, 사정회, 액자 속의 태극기, 친일파의 동상과 기념관 등등 교육계와 학교에 존재하는 수많은 일제 잔재들을 걷어낼 때가 되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청와대가, 교육부가 못하면 교육청에서라도 앞장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할 일은 일제 유물이자 군부독재의 잔재인 국정교과서 부활 시도가 아니다. 교육계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광복 70주년을 기념할 자격이 생긴다. 그래야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 흘린 선조들을 추념할 자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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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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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일제·유신의 공통점, 대통령은 그렇게 부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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